김민정 시인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처럼 심장에 살짝 쿵, 하는 울림 같은 게 있었다. 두 분 다 내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위인전 속 인물 같은 큰 어른들이었기 때문이다. 봄이면 고요한 숲 속 울울창창한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는 스님을 만날 수 있었고, 겨울이면 높디높은 산동네 아이들 틈에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채 손을 흔드는 추기경님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풍경 그대로 그렇게 자연인 줄 알았다. 그 자연 그대로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다. 부모를 놓치고 난 뒤에야 부모를 좇는 자식의 마음이 우매함임을 알면서도 나는 뒷북처럼 뒤늦게야 이 두 사람의 그늘을 좇았고 그 아래서 잠시 불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요는 “당신 다 가지세요”였던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내가 줄 수 있고 네가 가질 수 있다면 이는 내 것이 아니고 네 것이니 다 털어주겠다는 말, 아니 말보다 발 빠른 실천! 따지고 보면 참 별말도 아닌데 누구 말마따나 총 맞은 것처럼 멍했다. 책상에 앉으니 연필꽂이 가득 별별 색색으로 꽂혀 있는 필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볼펜 한 자루면 족하지 아니한가, 하여 빈 종이상자에 그것들을 와르르 쏟아뒀다. 옷장을 여니 행어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외투 한 벌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하여 두고두고 안 입었던 옷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서재에 들어서니 책장이 무너질 듯 다닥다닥 쌓여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딱 한 권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하여 사고 또 사도 기억 못 한 책들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몇번 인연이 닿은 적 있는 동네 고물상 부부를 불러 책과 필기구를 싸 보내고 옷가지들은 세탁소 아저씨에게 맡겼다. 먹고사는 게 변변찮아 뭘 할 수가 있어야지요,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아저씨는 종종 이렇게 모인 옷가지들을 빨고 수선해서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는 것을 나름의 봉사로 삼고 있다고 했다. 다들 뭔가를 하긴 하고 사는구나, 부끄러워지는 찰나 백화점에서 보내온 우편물을 뜯으니 명품세일에 덤을 더하는 쿠폰 북이 두툼했다. 가방, 옷, 화장품… 아, 사고 싶어라 하는 바람이 어느새 나, 사야 하는데라는 당위로 점점 바뀌는 이 속물스러운 마음은 어디 숨었다 나왔나. 사실 사람의 근본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짬을 내어 피정이라도 다녀올까, 가서 침묵 속에 나란 인간을 좀 깊숙이 들여다볼까, 하여 이곳저곳 수녀원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중 기도하고 노동하는 것을 들숨과 날숨으로 삼은 곳이 있어 이래저래 들여다보기를 한 시간, 이로 내가 얻은 것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트라피스트수녀원의 유기농 딸기와 포도와 무화과 잼 세트가 전부였다. 그러고는 다시 독일식 식빵 파는 가게로 고고. 미친 거 아냐, 너! 돌아가실 때까지 법정 스님의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였다는데 나의 화두는 ‘삶을 왜 사는가’가 아니라 ‘빵을 왜 사는가’이니 아무래도 나의 참 어른 되기는 아예 글러먹은 듯하다. 며칠 전 알고 지내던 선배 시인 둘이 출가를 했다. 한 선배는 이미 머리를 깎았고, 또 한 사람은 머리 깎을 준비 중인 모양이었다. 신문에 난 그들의 사진을 보니 대학원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기억이 났다. 더불어 뒤풀이 자리에서 소주와 삼겹살을 구워먹던 일도 동시에 말이다. 단순한 나는, 뭐든 잘 못 참는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냄새라는 걸 대체 어떻게 참아낼 수가 있단 말인가. 위 내시경 검사를 잡아놔도 자장면 냄새를 못 참아 포기한 적 많은 나에게 이른바 큰 어른이란 코가 없는 사람을 뜻함이 아닐까 싶어졌다. 시에도 쓴 적 있지만 냄새란 건 들키면 평생을 지는 거니까.
김민정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