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2.1연구소 소장
삼국지 제갈량의 영향인지, 동양에서는 책사라는 아주 독특한 직책을 상당히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선 최고의 책사는, 지금의 압구정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인 바로 그 압구정 한명회가 아닐까 싶다. 한명회가 세조의 왕권 장악을 도운 계유정난에서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라는 구전민요가 유래했다고 알고 있다. 나쁜 의미로는 ‘모사꾼’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요즘은 기획자·참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어쨌든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기 전에 기획하는 사람들을 주로 책사라고 부른다. 진보정치에서 최고의 책사는 디제이피 연합을 기획해서 처음으로 진보가 집권하게 만든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그의 머리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다른 성격의 정권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좌희정 우광재’는 아무래도 책사 스타일보다는 ‘로드 매니저’ 느낌이 드는 보좌관 스타일에 가까운 것 같다. 유시민씨는 책사 스타일이지만, 전 정권에서는 창을 들고 길을 여는 조자룡 스타일의 장수였던 것 같다. 어쨌든 뭐라고 하든, 지금은 한나라당 세상이다. 책사라는 눈으로 보면, 현재의 길을 연 한나라당 책사들은 아주 화려하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드물게 상식적인 얘기를 하던 유승민 의원, ‘박근혜의 복심’이라고 불렸던 이혜훈 의원 같은 사람들이 박근혜의 책사라고 알고 있다. 반면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정두언 의원 그리고 지금은 권력에서 한발 물러난 듯이 보이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학자 출신인 박형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등이 대통령 계열 책사라고 알고 있다. 대학 시절, 없던 용돈을 털어서 박형준의 글을 보기 위해서 잡지를 사던 시절을 생각하면, 하, 격세지감이다. 2010년 대한민국의 최고 책사는, 좋든 싫든, 정두언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말 못하던 ‘형님 권력’을 과감히 견제하고, 심야 학원 제한과 같은 일들이 그가 직접 추진한 일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권역별로 경선을 추진하는데, 정말 머리가 좋기는 좋아 보인다. 민주당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커 보인다. 게다가 친박연대의 후신인 미래희망연대와의 합당도 부드럽게 성사시키는 걸 보면, 그야말로 한국의 특에이급 책사라는 게 맞기는 맞는 것 같다. 좋은 싫든, 지방선거 국면에서 반엠비를 끌어가는 사람들이 정두언 앞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그런 그가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4대강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생명을 죽인다고 하는 것은 오해라고 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알고도 방송이니까 그렇게 얘기한 것인지는 알기가 어렵다. 그가 한명회처럼 역사에 남을 책사가 될지, 아니면 그냥 이명박의 정무부시장 출신인 가신에 불과한 것인지, 앞으로 4대강 사업의 운명과 국토 생태계의 생명이 밝혀줄 것 같다. 둑과 보로 생태계의 생명이 위협받고, 준설 과정에서 파헤쳐진 오니로 오염될 식수원으로 우리 생명이 위협받는다. 그가 한국 최고의 책사로서 그 위치에 걸맞게 생태학 책 조금만 들여다보고, 플로리다의 에버글레이즈의 생태복원에 관해서 조금만 살펴본다면, 우리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 <사이언스>에서 4대강 사업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지구의 벗’과 같은 국제 환경단체 연대기구에서도 4대강을 세계 최대의 환경재앙 사업으로 검토를 시작했다. 너무 한나라당과 그 측근 그룹끼리만 ‘모사’하지 말고, 세계적 흐름과 국제적 여론의 동향 같은 것들도 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나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가 성공한 책사가 되기를 바란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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