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돌연한 별건수사를 보며 못내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그걸 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수사의 당부당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던 건 아니다. 검찰의 조처에서 무언가 섬뜩한 광기 같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물론 의문을 제기하자면 검찰의 사전보고 여부와, 그의 정무적 판단 내용부터 따지는 게 정상일 게다. 그러나 이번 조처의 파격성은 그런 과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비록 죽은 권력을 향한 것이긴 하지만, 그 집요함과 공격성은 살아있는 권력의 등줄기에도 소름이 돋게 만드는 것이던 까닭이다.
지레짐작이지만, 이번 사안에 관한 한 검찰은 정권의 정무적 판단을 구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무지막지한 정치권력이라도,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실패하자마자 보복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다른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걸 묵인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허다하게 지적돼온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선고 바로 전날 일부 일간지에 흘려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도록 한 것도, 사실은 정치권력이 딴죽을 걸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만큼 비상식적이다.
물론 한 전 총리를 부동의 대안으로 우뚝 서게 한 검찰에 정권이 압박을 가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미네르바, 정연주, 피디수첩, 교사 시국선언 기소 등 상궤를 벗어난 일은 허다했다. 그러나 이번 건은 성격이 다르다. 정권 차원보다는 검찰 조직과 체면을 우선시한 문제다. 정권이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한 전 총리를 일떠세우려는 것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검찰이 불현듯 내보인 저 집요함과 공격성, 맹목성과 오만함의 칼날은 물론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 막판엔 와르르 무너지는 게 한국의 정치권력이다. 이전의 모든 단임 대통령이 경험했던 일이다. 이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런 처지를 비켜갈 이유나 재주가 많은 것도 아니다. 후계자가 권력을 쥐건 야당이 권력을 쥐건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수족을 자르는 데 최전선에 투입되는 게 검찰이다. 검찰 수사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야당은 검찰 개혁을 외치지만, 여당만 되면 입을 씻는 이유는 바로 그 편리함 때문이다. 다른 권력기구와 달리 검찰만 유일하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검찰을 자신의 의도대로 활용하려는 정권 차원의 계산 탓이었다.
지금만큼 검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권도 없다. 그러지 않았다면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문제, 한상률 전 국세청장 문제, 형님 혹은 천신일 문제 등이 이렇게 쉽게 유야무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정치적 사건을 마구잡이로 기소해 정권의 의지를 관철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복종하는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복종할 뿐이다. 상명하복, 검사동일체 등 조폭과 비슷한 조직 원칙을 유지하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신조를 내면화한 것은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온 탓이다. 검찰은 그래서 일단 상황이 바뀌면 바로 공격 모드로 전환한다.
이 대통령은 이제 검찰을 고민해야 한다. 이유는 충분하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그가 믿을 건 여당보다 야당일 것 같다. 여당은 절대로 검찰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 좋은 권력 재창출 수단을 일부러 뒤집어놓을 이유가 없다. 야당은 정반대다. 대검 청사에 걸려 있듯이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정치보복의 악순환도 그친다. 그건 이 대통령의 문제이기도 하다.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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