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김연아와 김예슬, 우리의 대학 / 류동민

등록 2010-04-14 19:36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재학하는 대학교에 다녀갔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김연아 선수는 대학 총장님과 만나 격려 말씀을 들었고 두 시간짜리 수업에 늦게 출석하여 10여분 동안 강의를 듣고 쏟아지는 학생들의 관심 때문에 사진촬영까지 했다. 그 기사를 읽고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수업일수의 3분의 1 이상을 결석한 학생에게는 무조건 F 학점을 주어야 한다는 성적처리지침이었다. 오해 말기를! 언감생심 국민요정의 출석상황을 물고 늘어지다 자폭하는 “열사”가 되려는 뜻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 대학이 바로 “거대한 적 ‘대학·국가·자본’에 작은 돌을 던지”고 싶었다는 김예슬 학생이 다녔던 대학이라는 점이 마음에 몹시 걸렸다. 김연아 학생을 격려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총장님이나 교수들이 과연 김예슬 학생에게는 무엇을 해주었을까? 아니, 내가 만약 그 대학의 교수였다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곧 부질없는 상상임을 깨닫는다. 내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대상은 김연아나 김예슬, 그리고 그들의 대학이 아니라 우리의 대학, 우리의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오래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그 흔한 “전통의 명문”은 고사하고 다크호스 소리 한번 못 듣던, 예선탈락만 밥 먹듯이 하다가 어느날 전격 해체된 야구부가 있었다. 학급조회만 끝나면 하루종일 운동장에서 야구연습만 하던, 같이 생활해본 적이 없으니 이름이 기억날 리도 없는 동창생들. 그 나이까지 야구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던 그들 중에서, 그나마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은 다른 학교 야구부에서 받아주었지만, 나머지는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교무실 한구석에서 울고 있던 그 선수들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국가건 자본이건 기성세대건, 그 어떤 대상에게도 돌을 던질 힘조차 없는, 이른바 스펙 안 되는 비명문대에 다니는 많은 학생들을 떠올린다. 비인기학과에 다닌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기업도 아닌 학교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졸업과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불량품 취급을 받아야 하는 사정을 떠올린다.

대학이 국가에 종속되고 눈치를 보아야 하던 독재정권 시절, 교수들은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되어야 했다. 그런 체제에 비판적인 교수들은 밥줄이 끊겨야 했다. 글자 그대로 물리적 폭력 앞에 대학이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 숨죽여가며 시험을 거부한 학생들의 성적을 처리해주고, 잘릴 위험을 무릅쓰고 지지성명을 내주던 교수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당한 국가권력을 상대로 적어도 일부의 교수와 학생들은 같은 편에 서서 싸웠던 셈이고, 길게 보면 그 싸움을 이겨냈던 것이다. 그러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조차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지도 몇년이 지난 오늘, 대학의 자본에 대한 종속은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 종속은 독재권력과는 달리,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유인으로 강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자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학의 이름을 알리는 일이라면, 그리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학사원칙이나 영혼마저 팔아야 하는 생존경쟁 앞에 이미 “같은 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게 대학에서의 삶은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일까? 개인은 개인일 따름이지만 모여서 사회를 이루는 것 또한 개인이다. 그래서 그들의 대학이 아니라 우리의 대학에 관심이 필요한 것이며,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세상읽기] 1.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세상읽기]

광화문 시가행진을 보며 [세계의 창] 2.

광화문 시가행진을 보며 [세계의 창]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3.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4.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사설] 후보 한명만 출연하는 황당한 교육감 선거 TV토론 5.

[사설] 후보 한명만 출연하는 황당한 교육감 선거 TV토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