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부국장
“<한겨레>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북한 소행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김정일 정권은 지금 악만 남았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집단이잖아요?”
며칠 전 만난 보수진영의 원로인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이렇게 말했다. 한겨레 기자 앞이니 이렇게 표현하지, 속으론 “북한 소행인 게 분명한데 더 따질 게 뭐 있느냐”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북한 소행이 밝혀지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군사적 보복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자, 그는 “군사적 타격은 우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북한을 꽉 죄어야지요. 돈이 흘러들어가는 걸 막고, 북한 선박의 통행을 막고…, 그리고 삐라를 많이 뿌리는 겁니다. 그걸 북한 정권은 가장 두려워하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남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답변은 그래도 보수진영에선 온건한 편에 속한다.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들조차 ‘군사적 응징’을 공공연히 주문하고, 북한 연루설에 신중한 야당을 ‘이적행위자’로 몰아붙이는 게 요즘 보수의 분위기다.
사실 천안함 사건은 진보, 보수 양쪽에 모두 딜레마다.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명료하다. 유력한 원인들이 모두 논리적으로 빈 구석을 갖고 있는 탓이다. 침몰 상황만을 보면 외부폭발, 그중에서도 어뢰 또는 기뢰 공격의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의 한반도 정세나 한·미의 첩보수집 능력을 고려하면 북한 공격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이 둘의 괴리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엔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깔려 있다.
주로 진보 쪽 인사들은 ‘지금 시점에서 북한이 무슨 이득을 노리고 그런 공격을 벌이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북한의 행동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적 판단과 일치했던 건 아니다. 내가 현장기자를 하던 2003년 무렵까지도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대선을 코앞에 둔 5공 정권의 조작극이죠?’라는 질문을 간혹 받았다. 북한이 왜 군부세력의 재집권을 도와주는 일을 했겠느냐는 게 이들의 의문이었다. 그때와 비슷한 딜레마가 지금 진보진영엔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딜레마는 진보 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응방식은 보수진영 내부에서 오히려 격렬하게 갈라질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만난 보수진영의 원로인사는 “보수와 진보만 서로 싸우는 게 아니다. 보수 내부의 싸움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기에, 현 정부의 비교적 냉정한 자세를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 내부엔 이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를 참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일부는 이번 사태를 북풍으로 몰아가 정치적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리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만에 하나 북한 책임이 확인된다 해도, 군사적 보복을 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다만 한가지 뚜렷하게 국민에게 각인되는 건, 정부의 무능과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일 뿐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건 팩트(사실)다. 천안함 함수가 끌어올려지고 주변에서 건진 파편을 통해 뚜렷한 증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다. 대통령의 눈물을 믿진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군이 사고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능력과 정직함을 갖췄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박찬수 부국장pcs@hani.co.kr
박찬수 부국장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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