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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수박을 그린 뜻

등록 2005-06-13 17:45수정 2006-02-21 18:39

옛사람의 그림 가운데 푸나무나 벌레를 그린 ‘초충도’가 적지 않다. 선비들은 사군자(매화·난초·국화·대)를 많이 그렸다고 하나, 사람이 바라는 것이 어찌 고결한 기품뿐이겠는가. 초충도엔 누구나 갖고 있는 세상살이의 소박한 욕망이 표현돼 있다.

가지·오이·수박을 그린 그림은 자손의 번성을 비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모두 씨앗이 아주 많은 채소들이다. 특히 가지는 한자로 가자(茄子)라고 쓰는데,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가자(加子)와 음이 같기도 하다. 여치나 방아깨비 같은 벌레도 알을 많이 낳으니 상징하는 바는 같다.

나비 그림으로는 장수를 빌었다. 나비 접(蝶)자가 80살 노인을 뜻하는 글자와 중국어 발음이 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양이 묘(猫)자의 발음도 70살 노인을 뜻하는 글자와 같다. 변함이 없는 바위와 패랭이꽃을 함께 그려 장수를 축원하기도 했다.

무당벌레 같은 껍질이 단단한 갑충 그림은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라는 뜻이다. 닭벼슬처럼 생긴 맨드라미도 높은 벼슬에 오르라는 의미다. 이 밖에도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꿀벌과 개미를 그렸고, 여의초로 불리는 제비꽃을 그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라고 빌었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생각해 겸손하라는 뜻으로 그렸다. 익어 고개를 숙인 조 이삭으로 겸손을 대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5천원짜리 새돈 도안에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수박 그림과 맨드라미 그림을 넣기로 했다고 한다. 수박 그림엔 나비와 여치가, 맨드라미 그림엔 개구리가 함께 그려져 있다.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초충도는 꽤 많지만, 그 가운데 진품임이 확실한 두 점을 고른 것이다. 조폐공사 쪽은 그림에 담긴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박뿐 아니라 맨드라미도 씨앗이 아주 많은데, 아이를 더 많이 낳자는 뜻을 담았다고 하면 어떨까 싶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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