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일보>가 숨어 있던 불씨를 휘저었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선거에 매몰되어 잊고 있었다. 촛불 2주년이다. 이들은 삭제와 왜곡 등을 통해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섰던 사람들을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몰아가려고 한다. 역시나 이 순진한 사람들 뒤에는 배후가 있었다. 지금 배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5년째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뽑힌 인천공항에 반대하던 자들이 촛불의 배후였고 이번에는 4대강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정치 훌리건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배후일까? 아니다. 4대강을 구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조선일보도 정도껏 눈치를 보며 4대강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정부를 압박하기도 한다. 그럼 뭔가. 이들이 기를 쓰고 부정하고 싶은 것은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지몽매해야 한다. 이들은 단지 선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철없이 다른 사람의 사악한 음모에 놀아났다는 것을 편집자에 의해 ‘거두절미하고 소설’로라도 강제로 반성해야 한다. 문제는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하여 누군가가 자신들을 대의하는 단순한 정치제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가치이다. 그 가치대로 정치에서부터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모든 것이 움직이고 판단되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촛불 때 깃발을 든 사람들은 12시가 되면 내일의 투쟁을 위해서 사라졌지만 이들은 새벽까지 남아 싸우다 닭장차에 올라갔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진짜로 믿고 실천하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이들을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노예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 계속해서 주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타난 사람들은 종교인이다. 천주교와 불교를 중심으로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모두가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무엇을 믿는가? 천주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창조질서이다. 신이 정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창조질서다. 종교인들은 이 질서를 ‘진짜로’ 믿는다. 민주주의를 가치로 믿은 촛불들처럼 이 질서가 정치문제에서부터 일상의 소소함까지 이 질서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삶과 존재감도 무너진다. 조선일보는 이들의 진정성이 두렵다. 세상에서 가장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종교 안에서도 너무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교단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믿음을 적절히 통제하려고 한다. 헌금이나 적당히 내는 것을 자신의 믿음에 대해 알리바이로 삼는 신자가 딱 좋은 신자이다. 조선일보가 바라는 시민이 바로 이 수준의 시민이다. 민주주의를 너무 믿고 참여하는 시민이 아니라 투표 한 번으로 흡족해하는 적당한 시민 말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조선일보의 진정한 믿음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진짜로 믿는 사람들을 무지몽매한 자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 진짜로 믿는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선택할 수도, 적을 골라내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들은 묻는다. 너희는 무엇을 진짜 믿고 있느냐고. 최선이 되기는커녕 차악도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는 사회단체에서 정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진보가 안타깝다.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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