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부국장
흔히 축구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공은 둥글다’고 말하지만, 축구보다 더 맞히기 어려운 게 선거 결과다. 신문사엔 “선거 결과를 가장 못 맞히는 건 정치부 기자들”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왜 그렇게 예측이 힘든 걸까. 선거란 투표를 통해서 민심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정치권이나 언론, 정치평론가들이 작은 정보엔 밝지만 민심의 밑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선거 프레임’이다. 선거를 미리 짜인 프레임(구도)을 통해서만 보려 하면, 중요한 걸 놓치기 쉽다. 6월2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북풍 대 노풍’으로 보는 것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물론 프레임을 어떻게 짜느냐 하는 건 선거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장 효과적인 프레임이란, 자기편은 결집하면서 동시에 상대편은 이완시키는 구도다. 모든 선거전략은 이걸 노리지만, 그게 뜻대로 쉽게 현실화하는 건 아니다. 자기편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이슈가 오히려 상대편의 결집을 가져오기도 한다. 선거 예측은 이런 데서 빗나가기 시작한다. 2000년 4월 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며칠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깜짝 발표했다. 사상 첫 정상회담이 선거 호재가 되리라 봤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그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는 “정상회담 발표로 서울·중부권에서만 20여곳의 접전지역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정부 발표가 한나라당 지지층을 더 결집시키는 쪽으로 작용한 것이다. 2002년 대선 직전 정몽준 의원의 단일화 약속 파기가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이끈 것과 같은 이치다. 현 정부가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오늘로 잡은 데엔,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선거를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여당의 인사들은 사고 초기에 미국의 9·11테러를 언급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조사하겠다. 조사결과 발표가 국론 통합의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1년 9·11테러에 관해 미국의 초당적 진상조사위가 백서를 내놓은 건 3년이 지난 2004년 7월이었다. 천안함 발표는 시기 선택부터 국론 통합에 실패하고 있다. 정치적 효과도, 내가 보기엔 분명치 않다. 보수층을 결집하는 데 이보다 좋은 이슈가 어디 있으랴 생각하겠지만, 공은 어디로 구를지 알 수 없다. 프레임에 갇힐 때 놓치기 쉬운 건 민심이다. 선거란 결국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평가일 수밖에 없다.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끄는 이유는 수십, 수백 가지일 테지만,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줄기는 집권세력을 향한 대중의 집단적 감정의 표현이다. 그게 선거의 본질이다. 200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엔 오스트리아 출신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나섰다. 영어 발음도 신통치 않은 그가 공화당 후보로 나서자 조롱과 비웃음이 쏟아졌다. 슈워제네거가 <터미네이터>에서 했던 “나는 돌아온다!”(I’ll be back!)라는 서툰 대사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토크쇼의 단골 패러디 대상이었다. 슈워제네거는 당선됐다. 캘리포니아를 심각한 재정적자에 빠뜨린 민주당 현역 주지사에 대한 심판이었다. 선거의 본질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다. 1980년대 폭압통치 시절 ‘광주’를 떠올리며 불렀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금 부르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2년 전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이들에게 “반성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대통령을 그냥 두고 보는 게 바람직할까, 전직 대통령을 퇴로 없는 구석으로 몰아간 정치검찰과 지금도 반복되는 수사행태를 계속 방관하고 있어야 할까. 이 정권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게 적절할까. 6월2일 모습을 드러낼 민심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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