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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교육감 선거와 진보의 포부 / 이범

등록 2010-05-31 20:49수정 2010-06-01 10:40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핀란드를 평준화의 모범사례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핀란드의 고등학교 선발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교평준화와 거리가 멀다. 고교선택제가 시행될 뿐만 아니라, 지원한 학생들을 내신성적 순서로 줄 세워서 성적순으로 선발한다. 우리나라 비평준화 지역의 학생 선발 방식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핀란드의 대학에서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대학별 본고사를 치른다. 이 본고사를 대비해주는 학원도 있다.

 그럼에도 핀란드에서 ‘교육대란’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학교들 사이의 수준 차이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꼭 특정 학교에 입학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우리나라보다 약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평등하고 직업별·학력별 소득 격차가 작기 때문이다. 의사와 목수가 모두 존중받는 사회라면 굳이 경쟁자들을 제치고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단호히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깊은 이론이나 이념을 따질 것도 없이, 논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직업별·학력별 격차가 작아지고 학벌주의가 완화되어야만 초·중등 교육에서 경쟁이 완화될 텐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보적 정치세력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이나 학벌주의에 대한 도전 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적으로 진보적 입장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 내의 경쟁이 완화된다면 교육에서의 경쟁도 자연히 완화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회 내의 경쟁이 강화되는 와중에 교육에서의 경쟁을 완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혹시 이것이 무용한 노력은 아닐까? 우파는 이런 노력에 대해서 냉소하거나 비웃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우파가 정신을 못 차렸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당면한 ‘출산파업’을 해결할 전망이 없다. 이처럼 높은 경쟁강도와 사교육비를 수반하는 교육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출산율을 높이기란 불가능함이 명백한데도, 이들은 애써 이를 외면한다. 세계 꼴찌 수준인 현재의 출산율이 계속되어 고령화가 가속화된다면, 이삼십년 뒤에는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간에 국가경제를 원활히 운영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질 텐데 말이다.

 우파가 일제고사로 등수를 매겨 ‘정답 빨리 찾기’ 훈련으로 내모는 것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저개발국가로서 선진국을 추격할 때에는 주입식 교육, 정답 빨리 찾기 훈련이 나름 의미있었을 것이다. 전세계 업계에서 20등쯤 하고 있을 때에는 1, 2등 업체가 하는 게 정답이고, 이를 재빨리 모방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업종별로 1, 2등 하는 기업이 꽤 늘어났다. 이런 기업들은 ‘남들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창안하고 해내야 한다. 규격화된 정답을 제일 재빨리 찾아내는 학생들을 최고 엘리트로 인정해주는 교육이 기업 경쟁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런 엘리트들은 서울대에서 집단으로 고시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가?

 진보진영은 사회의 반쪽을 대표하는 ‘저항세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파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까지 아울러서 그야말로 ‘주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출산율을 높여 장기적인 나라살림을 호전시키고,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미래의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포부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소수를 위한 특권적 학교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보편적 학교에서 최대한 다양한 교육이 가능해져야 한다. 학교가 보다 많은 체험과 탐구와 토론과 협동의 장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강남 한복판에서 교육감 후보 지지유세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다. 쉰 목을 가다듬으며, 이제 다음 유세 장소로 가봐야 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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