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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등록 2010-06-01 20:25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때가 됐다. 매체들이 20~30대의 투표율에 선거 결과가 달렸다는 기사를 쏟아낸다. 후보들은 필사적으로 청년의 투표 참여를 호소한다. <한겨레>도 어제 “20~30대 투표율, 그것이 변수”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벌써 투표일이다.

선거 막판이면 쏟아지는 이런 호소를 보고 듣는 청년의 기분은 어떨까.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추어올리는 것이니 어깨가 으쓱할 법도 하지만, 그들의 심정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쪽이 많다. 선거 결과가 뜻대로 안 나오면, ‘젊은것들, 너희 탓이야!’라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알리바이로 보이는 까닭이다.

최근의 경험만 보더라도, 젊은이들이 투표에 참여하기보다는 불참할 이유가 더 많다. 그들에게도 열렬한 투표 참여를 통해 정치 판도를 바꾸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다. 대학 등록금, 취업, 고용의 질 등 어느 것 하나 그들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기성세대 중심의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했고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만 해도 선거운동 때 일자리 300만개, 반값 등록금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젊은이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은 재계와 합작해 신입사원의 임금을 뭉텅이로 깎고, 안정된 일자리를 대폭 줄이고, 등록금을 폭등시킨 것뿐이었다. 양적 차이만 있었을 뿐, 이전 정권도 청년층의 기대를 저버리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형편에서 패배주의 운운하거나 세상이 너희들 손에 달렸다거나 하는 건 염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한국의 현대사를 움직인 건 행동하는 젊은이들이었다는 사실이다. 4·19 세대, 6·3 세대, 민청·긴급조치 세대, 그리고 최근의 386 세대는,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청년 정치장교들과 각축하면서 7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이끌어왔다. 이들은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고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스스로 구축했다. 그들은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세상을 끌어갔다. 이들은 지금 뒷세대의 벽이 되고 있다.

그 벽 앞에 선 오늘의 젊은이들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다. 벽을 타고 넘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웅크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더욱 초라하다. 저항의 기억도 없고, 승리의 역사도 없으며 연대를 통한 전진의 경험도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자본을 신으로, 기업을 성전으로, 경쟁지상주의를 교리로 삼도록 하는 시장근본주의 교육에 순치된 탓일 수 있다. 막대한 규모의 사교육비와 등록금을 들여 대학을 졸업하지만, 10명 가운데 1명은 실업자이고 2명은 비정규직이며 5명은 경제활동을 자의 혹은 타의로 포기한 경우다. 고작 2명만이 정규직에 취업한다. 그것이 현실이지만, 이들은 조용하다. 일자리나 복지 문제로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알 수 없는 존재다.

알아서 챙겨주는 나라도 없고 사람도 없다. 부모도 일단 가정만 벗어나면, 새로운 세대와 갈등하고 충돌하는 처지다. 심지어 그들을 사선으로 내보내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전쟁불사의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많다. 노인은 물론 젊은이들을 위한 나라는 이곳에 없다. 기성 권력은 개인의 소신과 삶의 태도를 문제 삼아 김제동의 마이크와 밥그릇을 쫓아가며 빼앗는 등의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길들이려 할 뿐이다. 설사 양심적인 지식인이라 해도 88만원 세대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할 뿐, 앞장서 해결할 순 없다. 스님이 소신공양을 한다고 기성 권력이 변하는 건 아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주인공 푸치와 선댄스는 결국 총을 든다. 그들에게 은행을 터는 건 내일로 향한 유일한 출구였다. 우리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 대신 표를 갖고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표는 약자들의 총과 총알이다. 여럿이 함께 쏘면 세상이 바뀐다. 나를 위해, 그리고 수많은 김제동과 이웃을 위해 표를 쏘자.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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