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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박근혜에게 미래는 있을까 / 박찬수

등록 2010-06-16 21:40

박찬수  부국장
박찬수 부국장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참패는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숨통을 틔워줬다. “박근혜 없이도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친이 직계 의원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으니까.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수 선거에서 패해 이미지를 구겼지만, 그에겐 여전히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강점이 있다. 다른 정치인을 압도하는 지지율이다. 그러나 문제는, 높은 지지율이 박 전 대표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청와대의 견제가 박 전 대표의 발을 약간 묶어놓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의 앞날을 가로막진 못한다. 진정한 위기는 오히려 박근혜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와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는, 박 전 대표가 맞닥뜨린 위기가 매우 근본적이며 심각하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 5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박 전 대표 지지율은 20% 가까이까지 떨어졌다. 정치인 지지율이 오르내리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 반등할 수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표 외엔 10%를 넘는 정치인이 여야를 통틀어 한 사람도 없다.

우려스러운 건 지지율의 내용이다. 수도권에서 그의 지지율은 호남지역 지지율과 비슷할 정도로 추락했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의 지지율이 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가운데선 독보적 1위지만, 그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건 대구·경북, 충청과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다. 이런 경향은 3월의 동아시아연구원 조사 등 최근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6·2 지방선거는 수도권 젊은층의 지지 없이 전국적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줬다. 여론조사 내용으로만 보면, 박 전 대표는 대선 승리의 결정적 조건을 이미 상실한 셈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질 때와 똑같은 상황이 2012년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리더십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전 대표는 미소로 대답했다. 늘 그렇다. 그는 다른 사람이 듣고 싶을 때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말을 하고 싶을 때 입을 연다. 쌍방향의 자유로운 소통을 그에게서 찾아보긴 어렵다.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끔씩 던지는 썰렁한 유머로 이걸 감출 수는 없다.

한나라당 친박 진영에 난상토론이란 없다.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박 전 대표 앞에선 항상 긴장하고 말조심을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는 반문이나 잠잠한 침묵은 상대를 쭈뼛할 정도로 위축시킨다고 한다. 그를 아는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이렇게 할까? 아니면 저렇게 할까?’ 하는 모습을 좀 보여야 주변 사람들이 자유롭게 얘기를 할 텐데, 냉정하고 명확하게 자기 생각을 밝히니 토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스타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건 1970년대를 기억하는 노년층뿐이다. 근대화 주역의 딸, 부모의 비극적 죽음을 꿋꿋하게 이겨낸 여인, 어머니를 꼭 닮았던 어린 나이의 퍼스트레이디, 이런 기억이 박 전 대표의 독단적인 스타일에 신비주의의 옷을 입히며 카리스마를 강화했다. 그러나 70년대의 기억이 아예 없거나 억압과 통제의 시대로 떠올리는 20~40대에게 박 전 대표의 모습은 권위주의적으로 비칠 뿐이다. 그의 가장 큰 덕목인 국가에 대한 강렬한 소명의식은, 쌍방향 소통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청와대와 내각에 40~50대 젊은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박 전 대표의 물리적 나이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은 1970년대 박정희 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런 리더십으로 앞길을 열어나가기엔, 박근혜의 지금 모습은 너무 지쳐 보인다.


박찬수 부국장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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