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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혁신학교, 성공시켜야 하는 이유 / 이범

등록 2010-06-21 21:54

이범 교육평론가
이범 교육평론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런데 지난겨울 우리 집에 넷째가 태어나자, 주변의 반응은 거의 전원 첫마디가 ‘애국자시네요!’였다. 만약 10년쯤 전에 넷째를 낳았으면 짐승 취급(?) 받았을 텐데 말이다. 짐승에서 애국자로 변모하는 데 10년밖에 안 걸리는 나라. 다이내믹 대한민국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압축성장은 교육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다른 나라에서 50년, 100년 걸릴 일이 10년, 20년 만에 이뤄진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우리나라의 한 세대는 다른 나라의 서너 세대에 버금간다. 우리는 아들딸을 키우는 게 아니라 증손자·증손녀를 키우는 셈이다. 기성세대는 ‘생존본능으로 빡세게!’ 공부하는 문화에 익숙하다. 그런데 그 자녀(증손자·증손녀!)에게는 생존본능이 부재하다. 왜? 한마디로 ‘살만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줄곧 ‘살만했던’ 아이들이 학교의 주류이다. 이들에게 생존본능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극심한 세대차와 ‘생존본능의 부재’를 인정하는 것이 미래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걸 무시하면 국가정책이든 가정교육이든 꼬이기 시작한다.

자라나는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동기’가 백배 중요하다. 공부하는 데 별다른 ‘동기’가 필요 없었던 (아니, 필요 없다고 믿었던) 기성세대와 전혀 다르다. 학습 동기를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업 자체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래 진로 또는 목표를 설정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동기유발을 꾀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 교육의 약점이 드러난다. 진로·적성 교육? 그런 게 우리나라에 있기나 하나? 학업 자체를 흥미롭게 만들자고? 몽상가 취급을 받는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주요한 국제 비교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학력은 세계 2~3위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온 반면, 학업흥미도는 최하위권이다. 2007년 중2 대상 수학·과학 평가 결과를 보면 수학에 대한 학업흥미도는 49개국 중 43위, 과학에 대한 학업흥미도는 29개국 중 29위(!)였다.

학업 자체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체험·탐구·의사소통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상호작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입식 교육과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머릿속으로 조리법과 영양소를 외워서 시험문제를 맞히는 것보다는 요리를 실습해보는 것이, 이순신이 지휘한 여러 해전의 순서를 외우는 것보다는 <난중일기>를 읽고 토론해보는 경험이 학업흥미도를 높이고 창의성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하자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안학교나 알아보라’는 냉소적 반응에 부닥친다.

고등학교 교육을 바꾸려면 대학 시스템과 대입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2012년 권력재편기는 이를 시도해볼 기회이다. 하지만 일단 진보적 교육감의 힘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부터 개혁할 수 있게 되었다. 경기도 지역에 이미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들을 가보면, 학부모들의 기대와 성원이 대단하다. 주변 집값이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지경이다. 어찌 보면 무상급식보다 더 파급효과가 큰 것이 혁신학교이다. 예산과 교사진의 한계 등으로 인해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할 수는 없지만, 혁신학교가 성공하면 학부모들이 ‘우리 동네에도 이런 학교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이런 여론이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면 어떤 정당이든 이를 무시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혁신학교는 ‘교육개혁’과 ‘정치적 의제의 진보’ 사이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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