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기자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김종철 교수와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를 언급한다. 그는 문학평론가인 김 교수가 문학을 그만두고 <녹색평론>이라는 생태 잡지에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가 선언한 문학의 종언은 정치운동의 가능성이 사라진 일본 문학에 국한한 얘기였는데, “2003년까지만 해도 노동자 집회에서 화염병이 날아다”녔던 한국에서조차 문학의 쇠퇴를 확인하고 놀랐다는 얘기다.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영국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그 뒤 소설은 쓰지 않고 환경운동과 반전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가라타니는 이렇게 덧붙인다. “로이는 문학을 버리고 사회활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을 정통으로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 문단에서 가라타니가 위로받을 만한 일이 생겼다.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시와 정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용산참사의 피비린내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기억해냈던 것도 문인들이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결코 흔치 않은 이중의 욕망”은 “한 진지한 시인의 고뇌로부터 시작됐”다고 썼다. 그 시인이 진은영이다. 진은영은 시와 현실을 뒤섞는 방법론을 김수영의 ‘온몸으로 쓰는 시’에서 찾는다. “시를 쓰는 지게꾼”이 되면 “딴사람의 시같이 될 것이다. 딴사람-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김수영 <생활의 극복>) 진은영은 ‘아름답고 정치적인 것의 야릇한 시작’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니 시작이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이냐!…우리는 함께 그 말에 입을 맞춘다.”
시인에게 정치를 고민하게 한 것은 누구인가. 문학에 정치를 돌려준 그의 이마에 입이라도 맞춰야 하나.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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