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부국장
꼭 40년 전인 1970년, 야당인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40대 정치인 세 사람이 격돌해 대통령후보를 뽑은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연공서열 구조가 훨씬 강고했던 그 시절에 40대 대통령후보라니…, “젖비린내가 난다”며 파르르 떨던 유진산(당시 65) 신민당 총재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김영삼이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서겠다는 선언을 한 게 그의 나이 42살 때였다. 여기에 45살의 김대중과 47살의 이철승이 가세했다. 유진산, 윤보선, 허정으로 대표됐던 야당의 늙은 리더십은 한순간에 밀려났다. 1970년 9월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은 결선투표 끝에 김영삼을 극적으로 꺾고 신민당 대통령후보 직을 거머쥔다.
젊고 패기에 찬 김대중은 선거부정이 판을 친 71년 4월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를 95만표 차로 따라가 공화당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신민당은 89석을 얻어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며 대약진을 한다. 그때 <대한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신경식 전 국회의원은 “야당에 몰표가 나온 걸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국민들이 젊은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참 민심이란 게 무섭다는 걸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 뒤 한국 정치에서 ‘40대 기수론’은 신화이자 꿈이 됐다. 선거에서 질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세대교체론이 나왔지만, 1970년의 신민당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젊은 리더십에 기대하는 순수한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흔히 시대정신이라 불리는 담대한 가치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돌풍은 젊은 나이에서만 온 게 아니다. 그가 내세운 공약들, 향토예비군 폐지나 한반도 4개국 평화보장 방안과 같이, 당시로선 획기적인 약속이 유권자 마음을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41살의 이정희 의원이 민주노동당의 새 대표로 뽑혔다. 민주노동당이 나이도 젊고 몸집이 작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40대 초반의 여성을 당 대표로 내세운 건 신선하다. 강기갑·권영길 의원과 같은 당의 원로들이 젊은 리더십을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밀어주는 점도 보기 좋다. 새로운 리더십은 스스로의 도전에 의해 형성될 뿐 아니라, 당 중진들의 일치된 후원 속에서 자라난다.
민주노동당이 변화를 모색하는 데엔, 자꾸 정체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진보정당의 위기감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세대교체는 위기감의 발로다. 영국 노동당이 1994년 41살의 토니 블레어를 당수로 뽑은 것이나, 11년 뒤 이번엔 보수당이 39살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밀어올린 건 똑같이 세 차례나 정권 쟁취에 실패한 극한적 위기감의 표현이었다. 블레어와 캐머런은 그 몇년 뒤 영국 총리 자리에 차례로 올랐다. 국민은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지, 다른 진보개혁 세력과 함께 수권 정당으로까지 발돋움할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40년 전 신민당의 40대 기수들처럼, 현실의 어려움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국민에게 변화의 희망을 줄 수 있는 담대함과 비전이 필요하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원내 5석의 작은 정당도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데, 지금 민주당엔 어떤 위기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2012년 대선을 위해 젊고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손톱만큼도 없다. 민주당이 변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지난 6월의 지방선거처럼, 이명박 정권이 잘못하면 그 반사이익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요행이 매번 되풀이되는 건 아니다. 상대편의 결정적 실수에만 기대는 경기를 지켜보는 게 얼마나 갑갑한 일인지는 월드컵 축구에서 숱하게 봤다. 언제까지 그런 답답함을 국민에게 안겨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이 절체절명의 변화의 시기라는 걸 깨닫기를 민주당에 바라는 건 부질없는 짓일까.
박찬수 부국장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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