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국제부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임자 부시 대통령처럼 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 기대는 오바마 대통령이 동맹관계를 존중하고 무엇보다도 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한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초 분명하게 “천안함 공격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북한의 침략 행위”로 단정하고 전적인 지지를 밝혔다. 그러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적했듯이 다분히 말로 한 것이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전면 단절상황으로 몰고가는 대북제재에 나섰음에도 미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애초부터 배제했고 금융제재 등 추가적인 대북제재는 유보했다.
이 정부가 뭐라고 해도 안보리 의장성명은 얻은 게 없다. 북한을 규탄하지도,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요구도, 재발방지 약속도 없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24일 전쟁기념관에서의 대국민 담화에서 천명한 것이다. 물론 정부는 중국·러시아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중국과 미국이 타협한 결과다.
좀더 근본적으로 보면 이 정부가 간과한 게 있다. 미-중 관계다. 부시 대통령 때도 중시한 것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력을 전략적 단계로까지 격상시켰다. 부시 2기 행정부에서 밥 졸릭 국무부 부장관은 전략적 경쟁자였던 중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책임 있는 이해상관자’(Stakeholder)로 변화시켰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이를 ‘전략적 재확인’(Strategic Reassurance)이라는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이해상관자가 미국이 중국에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것으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이제 두 나라 관계는 ‘적극적이며, 협력적이며, 포괄적인’ 것이 됐다. 이는 천안함에서의 한-미 동맹 강화가 미-중 협력과 충돌한다면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무시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는 이런 미-중 관계의 변화가 안 보이나 보다. 그러니 그렇게 거침없이 중국을 밀어붙인 것 아닐까?
이 대통령은 앞서의 대국민 담화에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어떤 나라도 천안함 사태가 북한에 의해 자행됐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보고 들으라는 말이다. 그에 앞서서 이 정부는 4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놓고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다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해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을 샀다. 5월30일 제주 한-중-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옆에 두고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일관되게 얘기하고 있었다. 천안함 사건을 안보리에 회부한 6월4일 싱가포르의 <스트레이츠 타임스>와의 회견에서는 “천안함 사태 해결 없이는 6자회담도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중국은 “가급적 신속하게 천안함 사건을 매듭짓고 한반도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애초 서해에서의 한-미 합동훈련에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한다고 발표한 것은 한국 국방부였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결정된 게 없다고 부인했다. 두 차례의 연기 등 우여곡절 끝에 결국 훈련장소가 동해로 바뀌었다. 얼마 전만 해도 한-미는 키리졸브 등 서해상에서 대대적인 훈련을 했다. 이젠 중국 눈치 보느라 훈련도 맘대로 못할 지경이 됐다. 천안함 외교는 동맹에 대한 과신이 중국 무시로 나타난 전형이며 정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강태호 국제부 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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