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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 이승한

등록 2010-08-02 19:18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선배들의 글을 읽다 보면 비평 역시 대중의 관심사의 이동과 함께 유행을 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김윤식·김현으로 대표되는 문학평론의 뒤를 전영혁·임진모의 음악평론이 이었고, 시차를 두고 정성일·김영진과 같은 영화평론가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와이에스(YS)와 디제이(DJ)를 거치며 국민들이 동네 장기 훈수 두는 기분으로 정치 평을 하는 시대가 오자, 유시민·진중권과 같은 정치평론가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도래한 21세기의 첫 10년, 글쟁이들 사이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비평은 내가 몸담고 있는 티브이(TV) 비평이다. 블로그들을 둘러보라. 타자를 칠 수 있는 자, 모두 티브이 프로그램에 대해 한마디씩 거든다. 나 같은 밑천 없는 글쟁이까지 ‘티브이 비평가’ 소리를 듣는 걸 보면 비평의 인플레가 의심될 정도의 성장이다.

오늘날의 대중이 가장 사랑하고 몰두하는 것은 역시 티브이다. 젊은이들이 모여 웃으며 나누는 대화를 유심히 들어보시라. 아마 열에 여섯은 어제 본 티브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거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티브이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았지만, 티브이는 인터넷의 상호소통성을 영악하게 흡수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제 티브이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기민하게 반영한다.

내 주 전공이 티브이 비평, 그중에서도 예능 프로그램 비평이라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내게 묻는다. 요새 예능이 점점 더 유치하고 가학적이고 말초적이 되어 가는데, 시청자들에게 유해한 이런 프로그램들이 대중의 환호를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의 대다수가 연배가 있으신 분들인데다, 그 질문이 담고 있는 힐난의 뉘앙스를 모르는 바도 아니기에 대개의 경우 웃으며 ‘저 같은 어린애가 어찌 알겠습니까’ 정도로 눙치고 넘어간다.

그래도 몇몇 분들은 집요하게 물어 오신다. 예의를 차릴 만큼 다 차렸다는 판단이 서면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대답해 드린다. “어르신,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웃음은 결국 당대 욕망의 반영이니까요. 대중은 음악이나 문학은 배우는 자세로 소비하지만, 광대들에게만큼은 ‘어디 한번 웃겨봐’라는 태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웃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조금만 당대의 코드에서 비껴가도 외면당하지요. 대중은 냉정해서 결국 자기 무의식이 원하는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는 개그에만 열광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오늘 우리 시대의 예능이 보시기에 유치하고 가학적이고 말초적인 개그로 가득 찬 이유는 오늘날의 대중이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어르신, 제게 던지신 그 질문은 ‘우리네 사는 모습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고쳐 물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까지 가면 저도 그게 궁금한 터라 대답을 못 하겠네요.”

이렇게 대답을 질러놓고 나면 물어본 분도, 대답한 나도 즐겁지 않다. 브라운관 너머의 치졸함을 논하던 안전한 대화가 갑자기 우리 사는 세상의 치졸함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반격해 오는 걸 누가 반기겠는가? 그리고 이런 속내를 등 떠밀리듯 고백한 나는 기분이 어떻겠는가.

어쩌면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티브이 비평에 열을 올리는 건, 스스로의 비루함을 직접 비웃을 용기는 없으면서도 대속을 바라기 때문일지 모른다. 티브이 속 세상을 비웃는 건 사실 우리 무의식 속에 똬리 튼 욕망을 비웃는 일이니까. 텔레비전에 내 욕망이 나와 있으니까.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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