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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캐머런의 나무, 김태호의 삽

등록 2010-08-10 21:42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국내총생산(GDP)은 우리 아이의 건강과 교육의 질을 측정하지 못합니다. 시의 아름다움도 위트와 용기와 지혜는 물론 우리의 열정과 나라에 대한 헌신의 가치도 측정하지 못합니다. 지디피는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할 뿐입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보수당 당수는 지난 2월 세계 최고 지성들의 잔치라는 테드 2010에 예정에도 없이 참석했다. 이 젊은 지도자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18분간의 짧은 연설로 족했다. 그는 40년 전 로버트 케네디의 이런 발언을 인용한 뒤,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을 정리한 로버트 케네디의 아름다운 꿈은 오늘날 더욱 쉽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정보기술, 엄청나게 변화된 행동경제학을 이용해, 시민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에 기반해 행복을 위한 행동을 실천에 옮기면 됩니다. 정부의 예산집행을 투명하게 하고(투명성), 공공서비스를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며(선택권), 시민이 정책 결정과 집행 결과에 대해 공직자의 책임을 묻도록(책임성) 하면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는 2005년 39살에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자 당의 상징(엠블럼, 문장)을 파란 횃불에서 녹색 나무로 바꾸었다. 첫 연설에선 “영국이 국립의료시스템(NHS) 서비스를 감당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과 싸우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무상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시스템은 영국 보수당의 공적이었다. 그는 또 환경·복지·보건 친화적 강령을 제시하고, 동성애자의 인권, 이민정책에서 더 관대한 자세를, 그리고 이라크전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13년 노동당 정권을 갈아치운 주역이었으니, 캐머런 대망론이 한국의 보수여당에서 나오는 건 자연스러웠다. 특히 6·2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여당 지도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친이명박계 안에서는 절실했다. 40대 총리 후보 김태호씨는그런 분위기에서 등장했다. 친이계나 친정부 언론이 그를 캐머런에 비교하며 열심히 헹가래를 치는 걸 무작정 나무라기 힘든 이유다. 사실 캐머런이 말하는 ‘순진한 사람 골탕이나 먹이는 쇼비즈니스 같은 정치’는 우리도 끝장낼 때가 됐다.

문제는 씻을 수 없는 바로 그 쇼비즈니스의 냄새다. 박근혜 대항마라는 의심을 덮어두더라도, 김 총리 후보의 행적은 캐머런과 거리가 너무 멀다. 오히려 이 대통령이 가장 위험하다고 꼽은 ‘늙은 젊은이’에 가깝다. 그는 이 대통령의 기분을 잘 헤아려 “이름 때문에 대운하를 포기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일갈해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대운하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약탈이자 전근대로의 퇴행을 상징할 뿐이다. 행복이 아니라 돈과 물질을, 상생이 아니라 오로지 경쟁, 공존이 아니라 약탈을 상징한다. 정권이 바뀌자 상생의 포용정책에서 대결정책으로 소신을 바꾸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가능성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자신의 깃발에서 이 대통령의 삽날을 지울 때 열린다. 캐머런은 자신의 정치적 대모였던 마거릿 대처의 극복을 통해 보수당의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부자 감세 정책을 저소득층 감세 정책으로, 무차별 민영화 정책을 핵심 산업을 보호하는 선별적 민영화로, 성장 제일주의를 성장·분배 보존 병행 정책으로, 반노조 정책을 노사정 사회협약 중시 정책으로 전환시켰다. 그의 자전거와 재활용 녹색운동화는 환경정책을 상징했다.

당장 전환이 어렵다면 이런 자세만이라도 닮아야 할 것이다.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난 캐머런의 아들 아이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란 눈썹을 움직이며 미소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 미소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라고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다웠다.” 캐머런은 가장 약하고 고통스런 이들의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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