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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죄 사함 / 함석진

등록 2010-08-30 21:18

함석진 기자
함석진 기자
개신교나 천주교가 신자들의 마음을 붙잡는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죄 사함’이다. 죄와 함께 일생을 살아야 하는 나약한 인간에게, 어떤 죄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없다. 많은 신자가 그 힘에 기댄다. 빚 못 갚는 이에게 온갖 협박을 일삼는 사채업자도, 교회에 대형 환풍기 한 대 사주고 장로가 된 ‘환풍기 장로’도 주님을 찾아 용서를 빈다. 사함을 받아 거듭난 힘으로 그들은 전과 같은 일주일을 산다.

김두식 교수가 쓴 ‘예수 없는 십자가, 십자가 없는 예수’란 글을 보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은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뿐 아니라 병사들 다수도 가톨릭 신자였다. 이들은 포르투갈 신부 세스페데스와 함께 밤마다 미사를 드렸다. 낮에는 전쟁터에서 무고한 조선 백성을 학살하고 밤에는 함께 모여 하느님을 찬양했다. 믿음은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백성의 믿음도 그렇다. 믿음은 믿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믿어주지 않으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無信不立)고 하소연할 일이 아니다. 총리 후보 자리에서 물러난 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잘못은 여전히 “잘못된 기억을 잘못 말한 잘못(실수)”이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정치는 진정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진심처럼 보이게 하는 것일까? 그는 도지사 시절 습지 보호를 목적으로 한 람사르환경재단 초대 이사장까지 지내면서 환경지킴이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습지를 깔아뭉개는 ‘4대강 사업 전도사’가 됐다. 권정생 선생이 믿음을 잃은 권력교회를 비판하며 “석유램프 켜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던 진심”을 호소했듯이, 다스리는 이들이 달라져야 한다. 죄를 숨긴, 잘 꾸며진 ‘스펙’으로 백성은 다스려지지 않는다. 백성은 그런 죄를 사할 생각이 없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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