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피디수첩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공중파에서 가장 진보적인 프로그램일 것이다. 얼마 전 피디수첩 ‘4대강 편’을 새로 부임한 김재철 사장이 ‘방송을 못 하게 한다’고 해서 소란이 있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즉시 엠비시(문화방송)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고 결국 일주일 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방송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반응은 ‘알맹이가 빠졌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피디수첩과 김재철씨가 모종의 타협을 했다는 음모론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피디수첩의 피디들과 엠비시 사장, 혹은 정권과 엠비시의 관계를 넘어 전체 미디어의 지형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대강 사업의 알맹이는 과연 뭘까? 피디수첩이 말하듯 수심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거짓말’인가? 거짓말만 아니면 4대강 사업은 괜찮은 건가? ‘4대강 사업의 알맹이’는 무엇보다 이 사업이 극소수 부자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는 것, 그래서 대다수 서민대중들에게 고통과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의 알맹이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피디수첩이 그런 계급의 관점에서 4대강 사업을 천착해 나간다면, 이명박씨가 거짓말을 했든 안 했든 그 자체로 사악한 사업이라는 점을 천착해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건 ‘방송사고’에 해당할 것이다. 그건 피디수첩 피디들의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피디수첩이 속해있는 시스템, 즉 제도 미디어 시스템의 상한선을 넘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피디수첩의 피디들은 공중파 피디로서 봉급과 문화자본을 포기함으로써 그 상한선을 넘어설 수도 있겠지만,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상한선을 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상한선이 있으니 피디수첩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적 영향력만 고려하더라도 피디수첩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분명히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 상한선 자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출발점은 현재 존재하는 상한선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미 그 상한선을 넘어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제도 미디어의 의미를 인정하는 일이다.(비제도 미디어라는 게 뭐지 싶은 독자는 여길 보시길. http://media.jinbo.net/)
우리는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하고 요사스런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바보가 되지 않는 비결은 결국 제도 미디어와 비제도 미디어를 균형 있게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비제도 미디어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전엔 비제도 미디어가 금지되었지만 오늘 우리는 스스로 그걸 금지한다. 여전히 관심은 제도 미디어의 내부에만 있으며 제도 미디어의 상한선(비제도 미디어에선 매우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한)에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반응하며 비장한 얼굴로 ‘언론 자유’를 외친다. 이미 확보된 언론 자유를 스스로 금지하며 제도 미디어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은 도무지 쳇바퀴를 내려올 줄 모르는 다람쥐를 닮았다.
김재철씨는 이른바 ‘개혁성향 사장’이던 엄기영씨를 ‘밀어내고’ 엠비시 사장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밀려난 엄기영씨는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로 나가려고 주소지를 강원도로 옮겼다 하고, ‘개혁방송 엠비시’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 소식에 ‘엄기영이 그럴 수 있느냐’ 분을 내기도 한다. 엄기영씨가 주소지를 옮긴 게 사실이든 아니든 제도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병적 집착을 드러내는 또 한 대목이다.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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