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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예종석의 오늘 점심] 진주냉면

등록 2010-09-12 20:27

“한 줌밖에 안 되는 메밀국수에 볶은 고기를 가늘게 썰어 넣어 배와 생강으로 맛을 여민 육수로 된 이른바 진주냉면이 구사마의 호물(好物)이었다. ‘이 냉면 기가 막혀.’ 구사마는 한꺼번에 두 그릇을 먹곤, ‘진주를 떠나면 영영 이 맛있는 냉면을 못 먹게 될 텐데…’ 하고 숙연히 한숨을 지었다.”

소설가 이병주의 대표작 <지리산>의 한 구절이다. 이렇듯 사랑을 받던 진주냉면이 이제는 본고장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남도의 대표적인 냉면으로서 평양냉면과 대척점에 있던 진주냉면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진주냉면은 화려했던 진주의 교방문화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 옛날 진주의 한량들은 기생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인 뒤 선주후면의 식사법에 따라 입가심으로 냉면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냉면은 한량들의 애용 메뉴였던 모양이다. 1915년에 나온 <부인필지>(夫人必知)에 당시 기생집으로 유명했던 명월관의 냉면 레시피가 다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냉면이 주당들의 사랑을 받은 음식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고기국물에다 디포리, 홍합, 새우, 황태 등으로 끓인 해물장국을 섞은 혼합육수에 있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벌겋게 달군 무쇠막대를 끓는 육수에 넣어 순간가열 시킨 뒤 2주간 숙성시켜서 쓴다. 고명도 평양냉면과는 달리 쇠고기 우둔살에 계란 옷을 입혀 부쳐낸 육전과 채 썬 배추김치 등이 올라간다.

1960년대에 진주의 유명 냉면집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봉곡동 서부시장의 진주냉면이 어렵사리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곳에 가는 길이 있으면 해물육수를 들이켜며 옛 한량의 풍류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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