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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김동호 문화부 장관’은 어떤가

등록 2010-10-12 18:12수정 2010-10-12 20:35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대개의 식물은 저를 보호하기 위해 다소간의 독성을 품고 있다. 드문 예외가 산사나무다. 거의 완벽하게 무독한 나무로 꼽히기도 한다. 대신 순이나 열매, 뿌리, 꽃 등 거의 모든 부위는 차나 술, 약재 따위로 온전히 내준다. 언젠가 경기도 한택식물원에서 산사차를 마시다가 불현듯 첫사랑이란 말이 떠오른 것은 산사나무의 이런 순정한 덕성 때문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장이머우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였다. 누구나 한번쯤 간절히 꿈꿨거나 경험했을 첫사랑에 대한 영상 보고서다. 온전히 내주고, 기다리고, 이해하며, 받아주는 그런 사랑을 그렸다고 한다. 산사나무는 그 상징이다. 무협 블록버스터에서 10여년 만에 초기의 순정한 세계로 귀환하는 장이머우 감독의 선택이었으니 단연 화제였다.

이 영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탓도 크다. 그와 부산영화제의 관계가 꼭 그런 첫사랑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지난 15년은 그가 오로지 이 영화제를 위해 헌신한 기간이었다. 외근중이던 그가 가족에게 한 일이라곤 일터로 가는 부인을 깨우기 위해 매일 아침 모닝콜을 한 것뿐이라고 할 만큼 열정을 온통 영화제에 쏟았다. 그런 그가 지금, 떠남으로 완성된다는 첫사랑의 공식처럼, 올 영화제를 끝으로 퇴장하려 한다. 그의 떠남에 대해 이미 무수한 헌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거기에 으레 따라붙는 아름답다는 수식어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따듯하지만 엄정한 그 앞에서 숙연함이 앞서는 까닭이다.

부산영화제와 그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다. “어쭙잖은 관리가 낙하산 타고 떨어진 줄 알았는데”(봉준호 감독) 그는 오로지 열정과 헌신으로 까다로운 우리 영화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세계의 어떤 영화제 위원장을 놓고 보아도, 헌신에서 유례가 없는 인물”(이창동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를 알고 지낸 세월 동안 그는 한 살도 더 나이들지 않은 듯 보인다. 마치 위대한 소나무처럼”이라는 중국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찬사에 디터 코슬리크 베를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요다 다쓰미 도쿄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동의한다.

그의 떠남이 숙연하기까지 한 것은 사실 이 정부가 앞세운 문화 무뢰배들의 추접한 욕망이 그 배색을 이루는 탓도 크다. 연기자 출신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양심적 문화예술인의 일터와 밥그룻을 빼앗았다. 그렇게 탈취한 자리에, 결국 그들 자신도 넌더리를 낸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같은 이들을 앉혔다. 미술계 원로라는 이는, 사법부가 불법부당하다고 판결했음에도 이 정권이 강탈한 자리에 뭉개고 앉아 예술인의 자존심을 더럽혔다. 오죽 그렇고 그런 이들뿐이었으면, 문화부 장관 내정자는 온갖 추접스런 행적 때문에 중도탈락했을까. 덕분에 자리를 보전한 유인촌 장관의 꼴도 구질구질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이 권력에 매달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제 자리마저 빼앗길 경우 그들의 더럽고 일그러진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두려운 것이다. 그것을 가려주고 분칠까지 해주는 권력은 얼마나 편리하고 고마운가.

이틀 뒤면 영화제의 폐막과 함께 김 위원장은 역사가 된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이는 그렇게 스스로 자리를 떠난다. 물론 전설이 되어버린 해운대 파티, 타이거 클럽 따위는 영화제와 함께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없는 그런 것들은 몸이 빠져나간 탈피처럼 허전하다.

아마 그런 아쉬움 때문이겠다. ‘김동호 문화부 장관’은 어떨까, 얄궂은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 그는 손사래를 칠 것이다. 집권 초 영화계부터 초토화시킨 이 정권도 내키지 않을 게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문화행정과 문화현장을 지켜왔고, 열정과 헌신으로 영화인의 대부가 된 그 말고 누가 이 정권을 문화파괴주의의 굴레에서 구할 수 있을까. 그가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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