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손학규 드라마’를 원한다면 / 박찬수

등록 2010-10-13 20:20

박찬수  부국장
박찬수 부국장

“손학규가 좋아서 찍었겠습니까. 전략 투표죠.”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한 얘기다. 10·3 민주당 전당대회의 본질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손 대표 스스로 인정했듯이, 민주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손학규가 아니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다. 그 열망이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세마리 조랑말 가운데, 그나마 가장 발전 가능성이 있는 손학규를 당 대표로 밀어올렸다. ‘꿩 잡는 게 매’란 속담이 있다. 한나라당 출신 인사를 당의 얼굴로 내세울 정도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위해선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에 충만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런 마음은 2012년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2007년 대선과 다가오는 대선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것이다. 5년 전엔 굳이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오는 대선에선 투표장을 찾을 이유가 차고 넘친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대전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년 반의 집권기간 동안,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통합을 이루는 데 이미 실패했다. 요즘 들어 ‘공정한 사회’를 내세우지만, 이런 슬로건에 걸맞은 정책들을 일관되고 끈기있게 추진해나갈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변화의 열망이 진보개혁 정권의 출현을 담보하진 못한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대한 분노가 매우 거셌지만, 민주당은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대통령 후보(존 케리)가 허약했던 탓이 컸다.

제1야당으로 민주당의 적통성과 기반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의 확산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현대사회에선,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도 정당의 울타리가 점점 약해지는 게 세계적 추세다. 미국에선 대통령 후보 경선을 당원뿐 아니라 비당원, 심지어 상대 정당 당원에까지 개방하는 움직임이 계속 확산돼 왔다. 2008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른 건 상징적이다.

상·하원의원, 주지사 등 당내 주류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클린턴은, 무브온과 같은 풀뿌리조직의 지원을 받으며 외곽으로부터 압박해 들어온 오바마에게 접전 끝에 패했다. 당내 주류의 전폭적 지지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대선 승패를 결정짓는 시대는 지났다. 2012년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을, 제1야당으로서의 기득권을 견고하게 부여잡고 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민주당 밑바닥의 정서도, 당의 적통성보다는 정권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보여준다.

숱한 기대와 우려 속에 민주당이란 거함의 키를 잡은 손학규 대표의 제1 임무는 여기에 있다. 야당 지지자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10년 만에 권력을 되찾은 한나라당을 다음 대선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다. 정권교체의 가장 확실한, 어쩌면 유일한 길은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에 있다. 손 대표는 끊임없이 밖으로, 그리고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민주당 상층부에 기대 대통령 후보직을 노리는 순간, 그의 발밑은 순식간에 허물어질 것이다.

손 대표에겐 진보개혁 진영 모두가 참여하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이뤄낼 책임이 있다. 손 대표뿐 아니라 유시민 전 장관, 4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한 진보정당 인사까지 참여하는 국민경선을 이뤄낸다면, 통합 후보가 되든 안 되든 손 대표는 정권교체의 디딤돌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런 연대가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기 전에, 그런 연대를 이뤄내기 위해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3년 전, 정치인 손학규는 “낡은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해 광야에 나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가 아니라 민주당 대표가 된 지금, 그는 진짜 광야에 섰다.

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