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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예종석의 오늘 점심] 우유죽·타락죽

등록 2010-11-09 20:31

우유는 옛날이 그리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나 접할 수 있었다. 그때는 우유를 그대로 마시기보다는 죽이나 전약을 만들어서 먹었다. 우유죽을 지칭하는 타락죽은 궁중의 대표적인 보양식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는 곳곳에 타락죽을 먹은 기록이 나온다. 우유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4세기께라고 한다. <고려사>에 우유죽을 만들어 먹는다는 대목이 나오고 우유의 공급을 담당하는 우유소라는 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조선조에 와서 타락색(駝酪色)으로 바뀌었는데 우유를 채취하기 위해 오늘날의 종로구 낙산 일대에 목장을 운영했다. 타락이라는 이름은 말린 우유를 뜻하는 돌궐어 ‘토라크’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타락죽이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 영조실록에 올라 있다. “예전에는 자전(慈殿)과 대전(大殿)·세자궁(世子宮) 밖에 모두 낙죽(酪粥)이 없었는데, 중궁전(中宮殿)에 을해년 이후 명하여 바치게 하였고, …세손궁(世孫宮)으로 말하면 이미 책봉된 뒤에는 사체(事體)가 세자궁과 다를 것이 없으므로 진배하게 하였으나, 원손궁(元孫宮)으로 말하면 정례 가운데에서 이미 왕자와 같게 되어 있는데 내의원의 낙죽을 잘못 알고 진배하였다.” 임금의 손자라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이 타락죽인 셈이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사정이 좀 나아졌는지 <동국세시기>에 “내의원에서는 10월 삭일부터 정월에 이르기까지 우유죽을 만들어 국왕에게 진상하고, 또 기로소(耆老所)에 보내 기신(耆臣)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구절이 보인다. 올겨울에는 집에서 이제는 흔해진 우유로 죽을 쑤어 실컷 먹으며 임금이 된 기분을 만끽해 보자.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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