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예종석의 오늘 점심] 명태, 그 이름의 유래

등록 2010-11-16 20:57

명태는 신분의 기복이 참 많은 생선이다. 고려시대에는 이름조차 없는 신세였다. 그때만 해도 명칭 없는 생선을 먹으면 몸에 해롭다는 미신이 있어서 먹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나온 <세종실록지리지>까지도 흔적이 보이지 않다가 1530년에 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무태어(無泰魚)란 칭호로 명태가 처음 등장한다. 18세기 말에 간행된 <재물보>에 북해에서 잡히는 생선이라서 북어라 부른다는 기록이 나오고 그 후의 <난호어목지>나 <임하필기>에 비로소 명태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임원십육지>에는 생것은 명태, 말린 것은 북어라 한다는 대목도 보인다.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송남잡지>는 “명천사람 태모(太某)가 북해에서 낚시로 잡았는데 크고 살지고 맛이 좋아서 명태라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명천의 명과 태씨의 태를 따서 명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밖에 함경도 지방에서는 명태 간으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혔는데 어둠을 밝게 해주는 물고기라는 뜻에서 명태라 했다는 풍설도 있다. 영양 부족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그 간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하여 명태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잘 먹지 않는 명태를 우리는 즐겨 먹는다. 1940년경의 통계를 보면 건조명태의 연간소비가 무려 2억1000마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200만이었으니 1인당 연간 10마리의 북어를 먹어치운 셈이다. 그렇게 흔하던 명태가 요즘은 귀해졌다. 특히 추운 겨울에 찌개를 해 먹으면 제격인 생태는 귀족생선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서울 잠실의 알천생태찌개는 싱싱한 재료에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끓인 칼칼한 탕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집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