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국제팀장
헉, 취재가 순탄치 않겠군.
지난달 말 이란 문화부 초청으로 참석한 제17회 국제언론전시회에서 첫날 저녁부터 주최 쪽 눈에 단단히 띄었다. 미리 한국에서 연락해둔 사람들을 만나고 들어가겠다니까, 함께 숙소로 가야 한다며 외국 기자 100여명을 태운 버스들을 출발시키지 않았다. 다음날 영어가 유창한, 하지만 가만히 보면 우리 동태를 주최 쪽에 일일이 보고하는 듯한 이란인이 통역으로 부스에 배치됐다. 주최 쪽과 언쟁도 벌여봤지만 별수 있나, <한겨레> 기자들은 눈치껏 번갈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란의 언론 검열 상황과 서구 언론인들 체포 등 밖에서 들었던 소식에 과하게 ‘쫄았던’ 점,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껄끄러움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란인들 자체였다. 직접 만든 한글 학습 자료를 들고 사진을 찍은 소녀(10일치 23면)는 자신의 이름 ‘사이데 차할바기’를 한글로 또박또박 수첩에 써 보였다.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며 웃으면서도 ‘노인 무임승차는 과잉복지’라는 <한겨레> 1면 기사를 줄줄 읽었다. 차도르를 입은 소녀 3명은 ‘쏘리쏘리’를 부르며 춤을 보여줬다. 남북한 사람들은 왜 서로 오갈 수 없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받아둔 ‘다이내믹 코리아’ 스티커 하나라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졸지에 관광공사 홍보대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테헤란에서의 엿새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내 취재와 달리 국제기사는 자칫 국가들 관계에 주목하는 데 머물기 십상이다. 핵개발을 둘러싼 서구와 이란 정부의 대립, 한국의 대이란 제재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과 수치를 동원한 수많은 기사를 다뤘지만, ‘이란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느낄까’에 대해 솔직히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극심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란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마찬가지다. “제재의 피해자는 정부가 아니라 이란인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란 정부 관계자의 발언은 ‘협박’이라기보다 진실에 가까웠다.
제재나 핵개발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털어놓는 이들은 “서구의 제재가 불공평하다”고 말하면서도, 고립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 이란인은 “이러다가 이란도 북한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은 있되, 서구가 은근히 이란 사회에 기대하는 혁명적인 반체제 정서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란의 한국 붐은 단순히 드라마 인기로만 설명되진 않는다. 내후년이면 한국과 이란이 수교한 지 50년, 양국 사이엔 수십년의 역사가 쌓여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인들조차 “가혹하고, 별 근거도 없다”고 평가하는 유엔 결의를 뛰어넘는 제재를 우리 정부는 미국의 독자제재안에 이어 서둘러 발표했다.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해도 “너무 성급했다”는 이란인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우리 정부도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했지만, ‘시장으로서의 이란을 잃지 않겠다’는 시각 이상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한 기업인은 “중국은 원조, 일본은 인프라라도 줬지만, 한국은 물건만 팔고 튀는 나라 아니냐는 정서가 중동 지역엔 있다”고 전했다.
작은 사례지만 이란을 포함해 중동 어디에도 한국의 문화원은 없다. 문화원 역할이 대수냐 싶겠지만, 선진국에 몇개씩 있는 것보단 “어디서 한글이나 한국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느냐” “어디서 영한사전을 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퍼붓는 이란인들에게 훨씬 더 소용 있을 듯했다. ‘살람, 코레이’(안녕, 한국인) 하며 친근함을 표해 오는 이란인들에게 우리는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미국이 써준 답안이 아닌 답 말이다.
김영희 국제팀장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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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한 소녀가 한겨레 부스를 찾아와 평소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며 만든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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