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대한민국 특유의 연례행사 수능이 끝났다. 부모님이건 선생님이건, 수많은 기업들까지도 이구동성으로 ‘지친 수험생’을 위해 각종 이벤트와 혜택을 제공하고, ‘해방된’ 수험생들은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을 가진다. 이들은 비로소 억압과 구속의 학창시절을 넘어 진정한 젊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일까?
이제 한창 즐기려는 후배 수험생들에게 그 모든 것이 허상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입시지옥을 벗어남으로써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느낌, 대학 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교육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신화와도 같은 환영이다. 입시 이외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용인되던 (혹은 그렇게 하도록 강요되던) 개인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자유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올바른 사회에 대한 고민과 성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 공부는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능에 목숨 걸고, 수능으로 인생이 결판나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속해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더 바람직하고 옳을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설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나’라는 존재란 평온한 가정의 한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조례안을 인간적인 교육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학교의 구성원이다. 또한 환경미화원이 제대로 씻을 권리를 갖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고, 콜레라로 죽어가고 있는 아이티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결의안은커녕 약속했던 구호금액의 30%도 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의 구성원인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범주의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입장으로 관계를 맺는 주체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를 좀더 시급하고 절박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동적인 개인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오로지 수능 성적만 잘 받고 좋은 대학에 가면 된다고 획일적으로 규정해버린 우리 사회는 학생들의 건강해야 할 정신을 쉽게 지치게 한다. 아니, 오로지 수능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피 말리는 경쟁에 자의 반 타의 반 뛰어들도록 한다. 너무 ‘수고’한 우리 학생들에게 공부 외에는 모든 것을 면제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나약한 주체를 강요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책상에 묶여 생겨난 군살들을 성형과 다이어트로 없애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무한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고교 생활 동안 고통스럽게 견뎌온 억압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지금, 진정한 ‘나’를 성찰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나? 자유롭게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즐거움도 필요하겠지만, ‘나’를 수능 경쟁으로 몰아세웠던 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이제 진정으로 해야 할 시점이다.
삶의 중심을 수능 경쟁에 두었던 소아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지진으로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아이티 사람들에게 비누 한 장 보냄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정의’와 ‘공생’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정의로운 주체성이 필요하다.
수능과 아이티. 너무 달라서 슬프고도 절망적인 단어다. 수능의 억압에서 해방되었기에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기에 자유롭다는 것을 우리 교육이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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