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진 기자
느티나무는 풍성하고 정갈한 나무다. 아무렇게나 놔둬도 곧게 뻗은 가지를 차곡차곡 겹치며 공간을 채워 자란다. 그 나무가 만든 그늘은 일품이다. 품성도 고고해 손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지치기를 하면 몇년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이 나무엔 벌레도 없다. 그래서 마을 어귀 정자 옆 수백년 고목 중엔 유독 이 나무가 많다. 나무는 늘 마을사람들을 품었다. 사람들은 봄에 트는 싹의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마을마다 정자나무 전설 하나씩은 있다.
700년 전 경남 진주시 집현면 기동마을에서 누군가 느티나무를 심었다. 사람들은 훌쩍 자란 그 나무 아래서 고된 논일, 밭일의 땀을 식혔다. 어느날 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자 나무는 다시 잎을 피우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는 3년 뒤에야 싹을 냈다. 마을사람들은 느티나무가 자신에게 생명을 준 사람의 삼년상을 치렀다고 했다. 충남 공주시 의당면 신촌마을의 600년 된 느티나무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울음소리를 내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충남도는 기특한 이 나무의 씨를 받아 키운 자손나무로 가로수 길도 만들겠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고고한 산속보단 흙이 깊고 진 땅을 좋아하는 습성대로 늘 논바닥 옆에서 민초들과 함께했다. 조선시대 중인 출신 시인 장혼은 ‘큰 나무’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어때야 하는지를 빗대 그렸다. “큰 나무(느티나무) 아래엔 뽐내는 벼슬아치, 꼴을 먹이는 자, 비단신을 신은 자, 짚신을 꿴 자…누구나 어깨를 비비고 발뒤꿈치를 서로 밟는다. 모두 한 가지의 그늘과 한 잎사귀의 바람을 받아 수고로운 자는 편안해지고 번거로운 자는 맑아진다.”
지금 그늘 하나 없는 나무는 백성들을 ‘전쟁 땡볕’ 아래 내몰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대오단결’만 외치고 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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