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혼군 / 김종구

등록 2011-01-03 18:21수정 2011-01-04 10:01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은 맹자를 몹시 싫어했다. 맹자가 내세운 왕도정치의 상당 부분이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불온한 사상이라고 여긴 탓이다. 엊그제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민귀군경(民貴君輕)이 대표적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라는 말에 주원장은 발끈했다. 그는 맹자의 위패를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서 쫓아내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맹자> 가운데 85개 구절을 삭제해 <맹자절문>(孟子節文)이라는 누더기 책을 펴냈다. “군주가 큰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 간해도 듣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를 바꾼다” “군주가 신하를 초개처럼 여기면 신하도 군주를 원수처럼 대한다”는 등의 주옥같은 문장들이 모두 날아갔다. 삭제된 문장을 가지고는 과거시험 문제를 낼 수도 없었다.

순자도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 역시 군주에게는 불온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치를 실천에 잘 옮긴 이가 바로 당태종이다. 신하 위징이 순자의 이 말을 인용해 직언하자 태종은 이를 마음에 새기고 태자에게도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태종은 위징에게 어떻게 해야 혼군(昏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이 되지 않고 명군(明君)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위징은 임금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 했던 간신 우세기를 총애한 수양제를 예로 들면서 “두루 폭넓게 들으면 밝아지고 편벽하게 들으면 어두워진다”는 유명한 답변으로 그 물음에 답했다.

위정자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등장한 것 자체가 현 정권에는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 군주의 행보를 보면 여전히 민심에 귀 막고 ‘혼군’의 길을 쫓아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