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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엠비는 그에게 답하라 / 김진호

등록 2011-02-21 18:17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대학교를 졸업한 딸과 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그는 걱정이 태산이다. 딸은 미취업 상태이고 아들은 대출을 받아서 겨우 등록금을 냈다. 수천만원이나 오른 전세금을 준비해야 몇 달 뒤에 있을 임대차 재계약을 할 수 있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어머니는 남편이 남겨준 유산을 제2금융권 몇 곳에 나누어 저축하여 이자 수익으로 근근이 살고 계신데, 그중 한 은행이 도산했다. 경제적 무능력 상태인 친정어머니께 매달 일정액을 송금했던 아내는 그의 눈치를 심하게 본다. 그는 국민건강검진에서 2차 정밀검진 판정이 나왔는데, 혹여 큰 병이 있을까 하여 병원 가는 게 두렵다.

그의 넋두리를 들은 다른 남자들도 푸념을 시작했다. 엇비슷한 얘기들이다. 다른 만남에서 한 남자가 생명보험 얘기를 했다. 과중한 스트레스가 연속되다 보니 돌연사로 숨진 동료가 있었다. 그는 바로 생명보험을 들었다. 자기가 죽더라도 아내와 자식에게 생존할 만한 최소한의 재산은 남겨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또다른 모임에서 한 남자는 건강보험을 들었다고 했다. 몇 해 전 그의 아버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3년여의 투병 기간에 가계는 거의 파산지경이 되었다. 질병에 대비하지 않으면 평생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고 가족이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그가 말했다. “내게 국가는 의미가 없어요. 그냥 가족과 살아남는 거밖에 남은 게 없지요.”

십수년 전, 외환위기가 한창일 때 30대 중반의 그는 대단히 열렬한 국가주의자였고 보수주의자였다. 당시 그는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고 난생처음 정치후원금까지 냈다. 또 금 모으기에도 동참했다. 주가 폭락으로 꽤 많은 손해를 보았고, 은행 대출금리가 치솟는 바람에 가계가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말이다. 또한 한 대형교회의 집사로, 나라를 위한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했다. 역시 난생처음 해보는 새벽기도였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수록 애국심이 절실하다.” 그러고는 내게 권고했다. “비판을 자제해요. 하나가 되어야 할 때 형의 말은 분열을 조장할 뿐이에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집권했을 때 그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 정부를 지지하는 건 나라를 빨갱이 소굴로 만드는 거야!”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 엠비(MB)의 집권이 결정된 직후, 그는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40대 말의 그는 더이상 국가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에게 유일한 이념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생존하는 것, 그게 전부다. 한때 열렬했던 기독교 신앙도 포기했다. 2년 전,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설날과 추석 때도, 출근하느라 교회를 못 나가다가 아주 떠나게 되었다. 신앙도, 국가도, 이념도, 그가 신봉해왔던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와 함께 있던 남자들 모두, 비슷한 느낌의 말을 나누었다. 엠비 정부 3년간 그들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한 구조적 위기와 얽힌 것이기도 하고, 더 폭넓은 지구적 위기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거의 모든 점에서 현 정부에 와서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그의 존재론적 위기와 낙망감에 대해 이 대통령은 뭔가를 말했어야 한다.

한데 집권한 지 만 3년째 되는 2월 말, 오랜만에 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엠비는 현안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고, 별로 희망적이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 몇 마디만 던졌다. 어쩌면 엠비는 애초부터 소시민인 그에겐 해줄 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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