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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예종석의 오늘 점심] 수제비의 팔자

등록 2011-02-22 19:07

수제비는 세월에 따라 신분의 부침이 심했던 음식이다. 지금은 서민음식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아무나 먹을 수 없던 귀한 음식이었으니 말이다. <고려도경>에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화북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고 했을 정도이다. 수제비의 발자취는 16세기 초의 <훈몽자회>에 나오는 박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중국의 문헌에는 그 이전에도 관련 기록이 나온다.

북송의 구양수가 지은 <귀전록>에 “당인은 탕병의 하나로서 불탁(不托)을 들고 있는데, 지금은 박탁(?? 또는 ??)이라 한다. 이것은 병(餠)의 조갑압법(爪甲壓法)에 해당하는 것으로 밀가루 반죽을 엄지손가락 굵기로 만들어 2촌 길이로 잘라서 손바닥으로 얇게 눌러 끓는 물에 삶아 낸 것”이라 하였다. 이 박탁을 조선시대에는 ‘나화’ 또는 ‘운두병’이라 하다 수제비가 된 것이다.

수제비라는 이름은 손을 뜻하는 수와 접는다는 의미의 접을 합쳐 ‘수접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제비는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북한에서는 밀가루뜨더국, 뜨데꾹, 국제비라 하기도 하고 경기도와 강원도에서는 뜨데기 또는 뜨덕국, 전라도에서는 떠넌죽, 띠연죽, 띤죽 또는 밀죽이라 하며 경상도에서는 제비, 수지비, 밀제비, 밀짱국, 밀까리장국 등으로 부른다. 충청도에서는 뚝제빅, 제주도에서는 자베기라 하며 그 외에 벙드레죽, 다부렁죽, 풀떼죽 또는 벙으래기 등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수제비의 팔자가 바뀐 걸 생각하면 음식은 역시 경제의 산물이다. 서울 종로구의 삼청동수제비는 오랜 세월 수제비로 명성을 얻고 있는 집이다. 한양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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