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
올해의 마스코트 토끼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일단 돼지 얘기부터 좀 꺼내야겠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토끼여, 너희들이 어제오늘 한국의 돼지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노릇이냐. 걸리고 싶어 걸린 것도 아니고 죽으려고 일부러 작정한 것도 아닌데 300여만마리나 되는 돼지가 산 채로 땅에 묻혔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소국 리히텐슈타인의 인구가 3만5000인 걸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한 국가가 사라져버리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수다. 그리고 간밤에 땅속에서 썩은 돼지 사체가 퍽 소리와 함께 땅을 뚫고 위로 솟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그렇지. 밑도 끝도 없이 강을 마구 파헤칠 때부터 내 알아봤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 나라 이 정권의 묘기대행진이다. 그러니 내게 엽기적인 시인이라 지탄들 하지 마시라. 나의 상상력은 이들이 눈앞에서 펼쳐 보이는 현실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상식적이니 말이다.
언제부터 돼지가 돼지로 불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돼지가 뒈지기 바쁜 요즘이고 보니 거리에 한 집 걸러 간판을 내건 돼지 부속 관련 음식점만 봐도 오래 눈이 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버릴 게 없는 게 정말이지, 돼지 아닌가. 소문난 돈가스 가게 앞에서 돈가스 정식 한번 먹어보겠다고 이십분 이상 줄을 서서 기름 냄새를 맡고 있자니 한때 날 두고 애칭이랍시고 돼지야, 하고 불렀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왜 하필 하고많은 동물 중에 돼지니, 하고 눈을 흘겼지만 이제야 알겠다. 내가 돼지라니, 그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던 거다.
대학교 1학년 때였나, 봄에 단과대학별 체육대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경기 후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다름 아닌 새끼돼지 잡기였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말했다. 지금부터 운동장에 새끼돼지 한 마리 풀어드릴 건데요, 이놈 잡으시는 분께 바비큐 해서 드실 기회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에 까만 나비리본을 맨 핑크색 새끼돼지가 운동장을 마구 뛰었고, 저놈쯤이야 하며 여러 무리의 학생들이 개떼처럼 그 뒤를 쫓았다. 돼지는 빨랐고 돼지는 영리했으며 돼지는 좀처럼 지칠 줄 몰랐으나 죽음의 공포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으므로 두려움에 뛰면서도 새끼돼지는 저도 모르게 물똥을 찍찍 싸댔다. 나는 그만 우뚝 그 자리에 서버리고 말았다. 허망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운 느낌 같은 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무용과 남학생이 발버둥치며 꿀꿀대는 돼지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을 때, 돼지고기 먹으면 사람도 아니다, 라고 결심했던 나는 밤늦게까지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에 곁들이며 이게 다 인생 아니냐는 식의 탄식이나 반복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여태 나는 돼지고기를 끊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줄줄이 죽어나가는 돼지로 걱정인데 한쪽에서는 홈쇼핑에서 34분 만에 2억5000만원어치를 팔았다는 달인 돈가스가 톱기사로 시선을 모은다. 호기심 반 작심 반의 마음으로 주문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메일을 여는데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독일의 한 시인으로부터 편지가 와 있다. 18세기 지도를 펴서 우리나라 쪽을 보고 있으니 신기해. 참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데 이백년이 지나고 보니 삼성 모니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다 채우고 있네. 알다가도 모를 나라야, 우린 참. 그런데 있지,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강이 파괴돼서 사라졌다는 걸 다들 알까.
어쨌거나 돼지꿈 꾸세요, 라는 우리네 흔한 덕담을 당분간 주고받기 힘들 것 같다. 꿈에 돼지를 보라니, 작금의 분위기에서 그것만큼 심한 욕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돼지를 잃어 배고픈 우리들이다. 우리야말로 배고픈 돼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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