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문화평론가
진중권
문화평론가
문화평론가
플라톤은 세계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 A급은 이데아 세계, B급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계, C급은 현실계를 흉내 낸 유사계(=시뮐라크르)다. 정치인에도 세 등급이 있다. A급은 ‘이상적’ 정치인. 하지만 이상은 현실이 아니기에, 실존하는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B급과, 다시 이를 흉내 낸 C급뿐이다.
민주정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개나 소나 정치를 한다고 나서는 것. 이런 상황에서 플라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과제를 자임한다. A급이 실존할 수 없다면, 불완전하게나마 그 이상형을 닮은 B급에라도 폴리스의 정치를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철인정치론’이다.
플라톤의 환생일까? 이 사회에도 ‘좌파’를 세 등급으로 나누는 이들이 있다. 물론 A급 좌파는 존재하지 않거나, 이념형으로만 존재한다. 고로 실제로 존재하는 건 B급과 C급. 이 둘을 구별하는 게 이들에게 좌파정치의 핵심 과제가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을 “B급 좌파”라 부르는 철인좌파가 있다. 최근 C급 가짜 시뮐라크르 좌파를 폭로하는 일에 단단히 맛을 들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일을 하는 데에 그는 이 지면을 활용하곤 한다. 그는 얼마 전 내 이마에 ‘자유주의자’ 딱지를 붙였다. 이번엔 조국·오연호에게 ‘중산층 엘리트’ 딱지를 붙인다. 그 딱지가 우리 사회를 “좀더 양식 있게” 만들어줄 거란다. 그의 비판의 요지는 상표권 도용. 왜 자기 허락 없이 ‘진보’나 ‘좌파’라는 상표를 쓰냐는 것.
그가 남의 이마에 딱지 붙이는 데 쓰는 접착제는 공허하기가 허무할 정도. 양당제가 고착되면 복지국가는 없다? 그래서 남들은 지난 10년간 맨땅에 헤딩하며 진보정당 만들었다. 반한나라 전선에 매몰되지 말라? 그래서 남들은 선거 때마다 표 분산시킨다고 몰매를 맞았다.
그동안 철인은 ‘B급’의 이미지를 위해 진보정당보다 늘 “조금 더 왼쪽”에 계시느라 이 모든 번거로움을 모르고 지내셨다. 그러던 분이 지난 10년 동안 올림포스 산정에 오르사 전능하신 플라톤 선생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가짜와 진짜를 심판하러 오셨다.
현재 진보정당은 집권 전망도, 수권 능력도 없다. 이것이 철인좌파마저 모자 눌러쓰고 진보정당을 외면해온 바람에 생긴 빌어먹을 현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암울한 것은 앞날. 딱지치기로 ‘진보’하는 좌파정치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게다가 진보정당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나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다가올 연합 속에서 되도록 진보의 가치를 많이 관철시키는 것이지, 그 연합에 딱지나 갈아붙이는 것은 확실히 아니리라.
“오연호, 조국 같은 중산층 엘리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학술, 문화, 방송, 엔지오 등의 헤게모니를 ‘우리가 갖는가 저들이 갖는가’가 달린 절체절명의 일이다.” 이 어법은 그의 입에 되물리는 게 좋겠다. 정권이 바뀐다고 조국 교수의 팔자가 설마 획기적으로 바뀌겠는가. “중산층”에 “엘리트”쯤 되면 굳이 ‘좌파’ 딱지 없어도 먹고산다. ‘진보’로 먹고사는 이들은 따로 있을 게다. 그런 이들일수록 생존권 차원에서 상표권 문제를 “절체절명의 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좌파’ 딱지를 허락받고 써야 한다면 차라리 반납하자. 좌파증은 좌파등급심사위원회로 보내면 되나? 그러니 이제 상표권 걱정은 마시되, 그저 우리를 C급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자신을 A급으로 구하소서. 그래야 고래와 권세와 영광이 아저씨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소망교회에서 집사 10년이면 장로 한다. B급 좌파 10년, 이제 영전하실 때도 됐다.
“오연호, 조국 같은 중산층 엘리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학술, 문화, 방송, 엔지오 등의 헤게모니를 ‘우리가 갖는가 저들이 갖는가’가 달린 절체절명의 일이다.” 이 어법은 그의 입에 되물리는 게 좋겠다. 정권이 바뀐다고 조국 교수의 팔자가 설마 획기적으로 바뀌겠는가. “중산층”에 “엘리트”쯤 되면 굳이 ‘좌파’ 딱지 없어도 먹고산다. ‘진보’로 먹고사는 이들은 따로 있을 게다. 그런 이들일수록 생존권 차원에서 상표권 문제를 “절체절명의 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좌파’ 딱지를 허락받고 써야 한다면 차라리 반납하자. 좌파증은 좌파등급심사위원회로 보내면 되나? 그러니 이제 상표권 걱정은 마시되, 그저 우리를 C급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자신을 A급으로 구하소서. 그래야 고래와 권세와 영광이 아저씨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소망교회에서 집사 10년이면 장로 한다. B급 좌파 10년, 이제 영전하실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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