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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지난한 대·중기 상생의 길 / 박현

등록 2011-03-06 20:03

박현 경제정책팀장
박현 경제정책팀장
박현
경제정책팀장
2년 전 중소기업 강국이 된 비결을 취재하고자 독일을 방문했다. 한국과 독일의 대·중소기업 거래 관행을 비교하기 위해 두 나라 대기업에 동시에 납품하는 독일 부품업체를 찾았다. 그곳 사장에게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독일은 기술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다. 반면 한국은 가격을 중시한다. 특히 납품가격을 내려달라는 요구가 강하다.”

이 부품업체가 납품하는 한국 대기업은 현재 세계적 경쟁업체를 물리치며 승승장구하는 곳이다. 이 대기업의 임원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그는 자신도 솔직히 그 비결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신이 찾은 답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외국 경쟁업체들도 기술 개발을 똑같이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는 이유는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에 있는 것 같다. 알다시피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잦고 비정규직 처우도 낮지 않나?”

이 대기업 사례는 우리나라 대·중소기업 관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임원이 언급한 경영행태가 이 대기업이 성공한 비결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기업 단위의 불공정 행위가 초래하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우선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심화다. 전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7~8%에 이르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2~3% 수준에 그친다.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인들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기술 투자나 우수 인재 확보에 애를 먹고, 대기업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는 보통사람들의 고용·교육·주택 문제와도 밀접히 연결된다. 중소기업 임금이 적으니 학생들이 대기업·공공기관 취업에 목을 매고, 그러다 보니 명문대 선호 현상은 깊어진다. 아이들의 사교육에 매달리고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를 다니다 보니 특정 지역의 집값·전셋값이 뛰고, 인접지역으로 번져간다.

동반성장이란 구호가 등장한 지 10년이 넘었어도,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놓고 상생을 압박한 게 한두차례가 아닌데도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이건(상생) 내가 20년 전부터 떠들어왔던 이야기”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은 변화를 거부하는 완강한 현실을 방증해줄 뿐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해법이 모색돼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몇가지 해법이 제시돼 있다.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납품단가 협상권을 중소기업 조합에 부여하는 방안, 불공정 행위에 몇배의 손해배상액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도는 집권당과 대기업의 반대로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 초과이윤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배분하는 ‘초과이익공유제’까지 제안됐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해법이 제안돼도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층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초과이익공유제을 ‘반시장적’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사실은 대기업의 초과이윤이라는 것이 경영자·노동자·협력업체 3자의 기여에 의한 것이라면, 그 몫이 3자에게 돌아가는 게 시장경제의 원리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또 협력업체의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둬 배분을 하면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당근이 될 수도 있다. 기득권층은 이런 것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선진국들은 성장정책과 함께 다양한 사회통합 정책을 동시에 펴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기득권층들도 현재 시스템으로는 자신들의 이익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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