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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우리 좌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 이윤영

등록 2011-03-07 19:56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튀니지를 기점으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아랍권 국가들의 혁명 사태에 대해 세계가 주목한다. 최초의 분석들과는 달리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들은 절대적 빈국이 아니라는 해석들이 나오면서, 혁명의 원인이 경제보다 정치에 있다는 박노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혁명의 가능성이 없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고 있는가?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 적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정의와 경제, 윤리와 정치를 가르치는 대학에서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사를 걸고 주목받지 못하는 투쟁을 해야 하는가? 왜 위험한 투자를 서슴지 않는 부자들의 돈은 안전한데 평생을 걸고 지키려 했던 서민들의 돈은 공중에서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는가? 누구 혹은 무엇에 의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가? 간교한 독재라서, 리비아처럼 시민을 대놓고 학살하는 독재가 아니라서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 도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전혀 짐작도 못한 채 우리는 항상 헛다리를 짚는다.

한국 사회에는 소리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랍 혁명에서 국가와 군대의 총에 의해 죽어가는 시민들의 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고통받아야 하는 원인도 모른 채 말이다. 유일한 원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못난 탓이다. 혹여 외적인 원인을 깨닫고 저항한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절멸당하고 만다. 고통이 분할된 까닭에 타인의 고통에 무섭도록 무감하다. 한국 사회는 경제대국과 민주주의 실현 국가라는 이름 아래 이제 혁명을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위험한 사회는 유혈혁명의 국가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같은 사회라는 진단은 수도 없이 내려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좌파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얼마 전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던 슬라보이 지제크는 인터뷰에서 신의 조각상에 소변을 봄으로써 ‘표준적 관념’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예술가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럴 수 있지요. 그래서 무엇이 논점이지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가려진 채 썩어 있거나 고여 있는 것들을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을 정치적 논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겨레> 지면에서 진중권과 김규항의 무엇이 진보고 무엇이 좌파인지에 대한 것처럼 보이는 논쟁은 “그래서 무엇이 논점이지요?”

좌파가 분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없는 무엇, 지금 불가능한 일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진짜이고 더 옳은지에 대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논쟁은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가능해야 하는 것들, 그것이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것이든 민중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부여되는 것이든 지금 좌파는 현재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우리 사회를 움직일 도덕적 다수를 차지할 수 있는 생산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프롤레타리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내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과 철학적 논쟁”이 필요하다는 지제크의 말이 정확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논쟁이 공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지면에 두 사람의 냉소적인 논쟁은 자칫 좌파 전체의 분열과 편가르기만 가져올 뿐이다.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집요하게, 때론 미치광이처럼 새로운 세계를 요구하고 획득하는 것이 좌파이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좌파가 이전까지의 영광스러운 순간과 절연”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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