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문화평론가
셈법은 다르다. 민주당은 ‘빅텐트론’을 내세워 민주당+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이 한 지붕 아래 살자고 제안한다. 참여당은 참여당+민노당+진보신당이 하나가 되어 그 불어난 몸집으로 민주당과 협상에 나서고 싶어 한다. 민노당은 참여당보다는 민노당+진보신당의 재결합에 더 관심이 있는 듯. 그 사이에 진보신당은 혼자 가기를 고집한다. 물론 그 당도 사회당 끌어들이는 데에는 관심이 있다.
말은 무성해도 진전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진보 대통합’ 논의는 제대로 된 정치철학에서 나온 전략적 논의가 아니라, 다가올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술적 꼼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각 당의 셈법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법칙이 추출된다. 큰 놈은 작은 놈에게 합치자고 하고, 작은 놈은 안 된다고 한다는 것. 평등하고 정의로운 소통을 배우지 못한 사회에서, 다수는 오만하고 소수는 불안하다.
‘진보 대통합’이 야당들의 통합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허구일 뿐이다. 지금 가능한 연대의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선거대연합일 게다. 게다가 그것은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이 그것은 유권자들의 지상명령이다. 만약 이 명령을 거부한다면, 선거 후에 몇몇 야당들은 아마도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통합’과 ‘연합’을 결합한 절충안도 있다. 가령 노회찬씨가 제안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실험. 연합에 참가하는 각 정당의 지지자들이 가상정당에 입당한 뒤, 함께 후보를 뽑아 선거를 치른 다음 각자 자기 지지정당으로 돌아가는 방안이다. 현재로서는 이 방안이 실현 가능한 통합 혹은 연합의 최고치다. 이 방안이 진보에서 내놓은 유일한 기획이기도 하나, 이조차도 실현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선거와 관계없이 이대로는 진보정당의 미래가 없다는 것. 진보는 이미 재생산이 끊긴 지 오래다. 대중의 눈에 진보정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엔엘/피디(NL/PD) 통조림에 불과하다. 그저 하던 대로 계속 한다고 이 위기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맘속의 엠비(MB) 탓”이라 회개하고 “남들보다 더 잘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어느 좌파 목사의 심령대부흥회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진보 대통합 그 자체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게다. 문제는 ‘어떤 통합’이냐 하는 것이다. 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그저 선거를 위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진보’를 새로이 세우려면 세 정당이 각자 구태를 버리고 거듭나야 한다. 가령 참여당은 참여정부의 ‘부채’를 지고 있고, 민노당은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의 ‘구습’이 남아 있으며, 진보신당에는 그 나름의 ‘경직성’이 있지 않은가.
민노당의 종북주의는 참여당과 진보신당이 견제하고, 참여당의 우편향은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견제하고, 진보신당의 고립주의는 참여당과 민노당이 견제한다면, 서로 상대에게 걱정하는 그 문제들을 해결 못 할 것도 없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통의 가치를 마련하는 것. 유럽식 ‘사회국가’의 이념 아래 서민복지와 남북화해를 추구한다는 최저 강령에는 세 주체가 모두 동의하지 않을까?
사회주의도 실현 가능하다고 하는 이들이 이런 낮은 수준의 연합은 몽상이라고 말한다. 그럼 대체 뭘 하자는 건가? 그래, 이게 불가능하다면 남은 것은 선거연합뿐. 그런데 이번엔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이 무의미하단다. 반엠비 전선은 부르주아만 이롭게 한다나? 그런 대책 없이 덜 여문 좌파들에게는 원조 빨갱이의 말을 들려주자. “프롤레타리아는 일반민주주의투쟁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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