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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고통을 감각하는 정치 멘토 / 이윤영

등록 2011-03-28 21:16수정 2011-04-01 17:11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참혹한 일본의 원전 폭발에서, 그칠 줄 모르는 물가 상승에서, 끔찍한 구제역 살처분에서, 이 거대하고도 막막한 고통 속에서 과연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 문제들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고통에 무감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전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목격했다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우리의 원전은 안전하다’고 명분을 세우는 행위는 분명 아닐 것이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공공의 영역, 정치가 존재의 이유를 잊고 허울만 남아 기능을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순 속에 한국 사회가 있다.

대학교가 시끄럽다. 등록금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때문이다. 살려달라는 요구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학교 쪽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더 절망적인 것은 절대다수의 무관심한 학생들, 바로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전면 파업이 시작된 지 하루도 안 돼 더러워진 200석이 넘는 대형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꾸역꾸역 경제학을 배우고 있다. 무엇이 정당한 보수이고 정의로운 분배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강의실과 파업 현장의 괴리에서, 이론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분노하지만, 그것은 아무 쓸모 없는 무기력함으로 나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언제나 풍족하고 안전한 것만을 추구하라고 배워온 탓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20대는 오늘 하루도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죄책감을 어깨에 짊어진 암울한 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경희대가 학생회와 토론을 통해 인상 등록금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인상금 3% 중 2%만 반환, 나머지 1%를 차상위 계층의 장학금과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1%까지 학교에서 부담하는 것이 등록금 동결의 최종 목표일 수 있지만, 소외된 이들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1%를 마련한 그 경험이야말로 정말 값진 성과이고 승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곳이야말로 좋은 대학, 일류 대학이라는 시각이 절실한 순간이다. 고통받는 자에게 눈감으면서 명성을 얻길 바라는 ‘유명한’ 대학들의 현장에는 도대체 어떤 훌륭한 비전이 창출될 수 있는가. 불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묵살되는 곳에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반윤리적이다.

삶을 관통하는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이 현재 한국 사회, 이 세계가 직면하는 고통들이 공동의 힘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임을 자각하며 책임져야 한다. 어떤 고통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그 속의 삶들을 배척하는 정치가 되지 않도록 주시하고 참여하는 세대가 돼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겐 그런 정치적 가치관과 신념이 지지받고 승리하는 경험이 절실하다.

“정치는 고통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최근 말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의 정치적 가치관과 신념은 한 줄기 빛이다.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정치적 신념과 청소부의 삶을 헤아릴 줄 아는 젊은이들의 감성이 보편화될 때, 우리 사회의 희망 또한 점점 커질 것은 분명하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세대, 특히나 청소년의 공동체적 감성이 주요 국가 중 최하위라는 이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약자의 고통에 대한 감각, 우리 시대의 정치 멘토가 갖춰야 할 진정한 자질이자 우리 스스로 회복해야 할 인간의 감성이다.


이윤영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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