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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막장 드라마 시즌 2’ 리비아 전쟁

등록 2011-03-29 21:52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막장 드라마의 특징은 사전에 세워진 줄거리가 없다는 거다. 질러놓고 그때그때의 시청자 반응에 맞춰 줄거리를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행한다. 시청자 반응을 높이려니, 자극적이고 황당한 상황 설정을 하고 결론은 더 황당해진다. 요즘 리비아 전쟁이 그 꼴이다.

리비아전은 전후 주체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 목표조차 불명확하다. 서방은 내심으로야 카다피 정권 타도와 친서방 민주정권 수립을 원하겠지만, 가능하리라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지상군 투입은 일찌감치 배제해놓고는, 전황에 따라 카다피 정권 타도, 휴전, 인도적 개입 국한 등으로 미국·영국·프랑스 당국자들의 의견이 널뛰기한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2차 대전 이후 국제전에서 막장 드라마의 원조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현재 아프간전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개입해 10년째 진행중이나, 뿌리는 소련이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려고 1978년 침공한 데 있다.

미국 등 서방은 아프간 부족 세력과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모여든 이슬람 전사들인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이 무자헤딘들은 1992년 소련군이 철수하자, 본국으로 돌아가 반서방 무장 이슬람주의의 뿌리가 된다. 9·11을 일으킨 알카에다의 창시자 오사마 빈라덴도 그중 하나이다. 또 미국이 파키스탄 국경의 아프간 난민캠프에서 파키스탄 정보기관을 통해 양성한 이슬람율법학교 출신 전사들이 탈레반이다.

이렇게 보면 무려 33년이나 끌고 있는 아프간전에서 미국은 오늘의 적이 알고보니 옛날에 자신이 키운 아들이라는 황당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알고보니 현재 아내가 옛날에 자신이 배반했던 전처이고, 며느리는 자신이 옛날에 버렸던 친딸이라는 황당한 악연의 막장 드라마와 비슷하다.

2차 대전 이후 모든 국제전은 ‘수렁’이지만, 그 원조라는 베트남전은 차라리 양반이다. 해답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전쟁 전으로 돌아가면 됐다. 특히 베트남전은 베트남 인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정통성을 가진 북베트남의 호찌민 정권에게 원래 몫을 돌려주면 됐다. 전쟁의 목적과 주체, 전후 주체들이 명확했다. 그랬기 때문에 20년이 걸렸지만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소련의 아프간전, 걸프전, 이라크전, 미국의 아프간전은 냉전시대 국제전인 한국전과 베트남전과 달리 전후 주체들이 명확하지 않다. 전쟁 뒤에 정통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통치할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는 걸프전이 잘 보여줬다. 미국의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1990년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냈을 뿐 이라크에서 축출하지 못했다. 마땅한 전후 주체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후세인 정권을 몰아낼 경우, 걸프 지역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현재의 이라크와 아프간이 증명한다. 미국은 후세인과 탈레반을 타도했지만, 이라크와 아프간은 더욱 혼란스럽고, 이슬람주의만 극성하다. 그래도 두 전쟁에서는 실현가능 여부를 제쳐두고라도, 기존 정권을 타도하고 ‘친서방 민주정권’을 세운다는 명확한 전쟁 목표라도 세우고 공포했다.


카다피 정권이 자멸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힘의 공백지대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어떻게 발현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막장 드라마 시즌 1’ 국제전인 아프간전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시즌 2가 겹치기로 개봉되는 상황이다.

막장 드라마야 시청자 반응이 시들하면 끝내면 된다. 이라크와 아프간이 아직도 엉망진창인데, 목표조차 정하지 못하는 리비아전을 국제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끝낼 것인가.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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