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2.1연구소 소장
적어도 한국 역사에서 토건과 민주주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노무현 탄핵으로 국회의원이 된 초선들이 했던 첫번째 토건질이 이른바 뉴타운법이었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보다 더 민주적이 되겠다는 명분을 걸었지만, 큰 토건, 작은 토건, 엄청 했던 당이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깬 건, 결국 ‘토건 대신 사람에게’라는 구호를 내건 탈토건 민주당이었다. 가끔 나한테 유시민의 손을 잡아주라고 개인적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한 말이 “새만금에 골프장 100개 짓겠다”는 골프 공약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는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중 토건을 내걸지 않고 선거를 치른 유일한 후보였다. 그 점은 지금도 높게 평가한다. 그 이후로 민주당 내에서 토건에 대해 조금은 다른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였다. 그러나 강원도와 분당에 내건 공약들을 보면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민주당의 뿌리가 여전히 토건파라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강원도의 동계올림픽 유치야 어차피 대표적 토건 정치인인 이광재를 이어받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자. 올림픽 산단, 경제자유지역, 접경지역 개발, 이런 대표적인 토건 공약들과 함께, 설악산에 설치하겠다는 오색 케이블카까지 등장했다. ‘토건 우리당’,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건가?
분당 지역은 더 가관이다. 결국 집 가진 사람들만 지원하는 리모델링 수직증축이, 한나라당이 아닌 민주당 법안으로 나온 것도 우스운데, 여기에 더해서 공사중에는 재산세까지 면제해주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보다 비싼 승용차세에 감가상각을 인정해주는 게 더 먼저 아닌가? 그래서야 취득세 면제라는 한나라당을 어떻게 견제하나? 이번에 민주당, 너무 토건으로 갔다.
토건이라는 눈으로 보면, 열린우리당의 토건이나 한나라당의 토건이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한나라당과 토건으로 경쟁해서 이기려면 더 황당한 것을 내놓는 수밖에 없는데, 뉴타운법이 그랬고, 지금의 리모델링 기간 중 재산세 면제가 그렇다. 불행히도, 그렇게 자기 재산권을 보호받은 사람들은 결국 투표할 때에는 한나라당 찍는다. 그게 지난 대선의 교훈 아니었던가? 그렇게 토건질하다가 자칭 ‘민주투사’들이 정권 날려먹은 거 아닌가?
생각해보자. 친이는 더욱 토건으로 갈 거고, 영남권 공항 공약으로 친박도 토건으로 달려간다. 민주당도 덩달아 토건으로 가면, 정권 찾아올 길은 요원해진다. 한나라당은 토건에서는 절대 강자고, 지방 토호들은 망할 때까지 한나라당 밀 거다. 4대강 반대한다고 ‘말만’ 하면서 정작 자기네 동네에는 케이블카 깐다고 하면, 토건에 반대하는 국민 절반의 마음은 도대체 무슨 수로 얻을 것인가?
민주당은 전월세 등 자기 집 없는 국민, 등록금에 등골 휘는 대학생, 실업자 혹은 비정규직 취업자, 이런 사람들과 정치할 것 아닌가? 일본 민주당이 결국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자민당으로부터 정권 받아 왔다. 이렇게 토건 선거 할 거면, 반엠비(MB)로 뭉친 진보정당들 바보 만드는 것 아닌가?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토건에 대한 인식론적 단절이다. 어영부영 한나라당하고 토건 경쟁 해서는 한국은 그냥 망한다.
최문순 후보, 손학규 후보,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귀하들은 지금 지방 토호들과 토건 공약으로 손잡으면서 20~30대, 집 없는 사람들, 비정규직들을 적으로 돌리고 계시는 겁니다. 이제라도 탈토건 선언을 하시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새 길이 열립니다. 누구와 정치할 건지, 정신 좀 차리세요.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