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내년 총선·대선 때 포퓰리즘에 빠져 재정안정에 반하는 일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 4월23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재정을 수반하는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면 국가재정은 거덜나게 돼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가리키는 방향이 묘하다. “선심성 복지를 경계하고, 재정안정을 기해야 한다.” ‘선심성’이란 수식어를 달고 칼끝은 ‘복지’를 향한다.
내년 선거를 너무 의식해서일까. 복지 담론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정치적 의도는 그렇다치고, 재정안정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재정안정을 해치는 정책은 정작 자신이 앞장서지 않았는가 말이다.
엊그제 ‘친수구역 특별법’이 본격 시행됐다. 자연친화로 포장한 겉과 달리 속은 4대강변 새도시 개발을 보증하는, 일종의 토건법이다. 개발 가능 면적은 전체 국토의 4분의 1에 이른다. 본류에 22조원, 지류에 20조원, 수질 관리에 또 매년 수천억원…. 4대강 사업비 증가는 가히 기하급수적이다. 수변 신도시 조성에 들어갈 돈까지 합치면 50조원은 훌쩍 넘길 것이란 추산이 나온다.
나라 곳간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정부 발표로는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370조원이라지만, 정부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공기업 부채, 보증채무 등을 합치면 사실상의 국가부채는 1400조원을 넘어선다. 집집마다 가계대출로 허덕이는데 공공부문, 정부 할 것 없이 빚더미가 쌓이니 숨이 막힌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나? 가장 큰 원인은 거품경제에 기반한 재정 운용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말기로 갈수록 경기부양 유혹에 더 빠질 것이다. 역대 정권 때도 그랬다. 정부 관료들은 “버블 붕괴 위험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당시에도 경고 메시지는 적지 않았다. 애써 외면했을 뿐이다.
어제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책을 또 한보따리 풀어놨다. 부동산 부양책이 나온 지 40일 만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지난주 건설사 사장들을 만났을 때 나온 건의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다. 당장 급한 불은 끄겠지만, 이런 임기응변식 단기 처방으로는 부작용만 더 키울 뿐이다. 부실 건설사 정리와 구조 개혁이 늦춰지면 결국 금융권 동반부실로 이어지고 국민경제도 멍든다. 막대한 재정을 경기부양 대책에 투입하고도 장기 침체로 치달았던 일본의 뒤를 따를 것인가.
안 그래도 지금 공적자금을 기다리는 곳이 줄을 서 있다. 부실 덩어리가 된 저축은행 뒤처리를 해야 하고, 취득세 인하로 발생하는 지방세수 부족분 2조1000억원도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 이래저래 국가재정은 속으로 곪는다. 약탈적 대출관행에 이끌려 가계부채 1000조원 문턱에 선 국민경제도 골병이 들긴 마찬가지다.
올해 국가 재정전략회의에서는 ‘재정 건전성’이 강조됐다. 그럼에도 재정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대규모 토건사업과 부자 감세 기조는 요지부동이었다. 재정 건전성을 높이려면 방만한 씀씀이를 줄이고, 세입을 확충하는 건 기본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재정 건전성을 꾀한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복지 지출 운운하기 전에 당장 부자 감세를 거두고 토건 부양책을 멈춰야 한다. 말로만 건전재정을 외치다가는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건사업에 매달리다 호되게 당한 일본과, 재정 투입에 따른 후유증으로 휘청거리는 그리스·포르투갈 등 피그스(PIGS) 국가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재정 악화는 국가재앙을 부른다.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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