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서울시립대 교수
정병호 서울시립대 교수·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
며칠 전 주요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강성춘 교수 등 서울대 교수 149명은 5월11일 정부·여당에 대해 국립대 법인화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현재 국회에 제출된 서울대법인화법 폐기 법안을 수용하여, 법인화를 원점에서부터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법인화로 인해 학문의 황폐화를 비롯한 온갖 부작용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서울대 법인화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는 점점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국립 서울대의 미래 설계 차원에서 문제를 처음부터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그동안 민주화교수협의회와 노조, 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서울대법인화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법인화 반대 투쟁을 해왔지만, 150명에 가까운 교수들이 한꺼번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명을 계기로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 법인화 정책의 절차적·내용적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사전에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함은 상식이다. 또 토론에 있어서는 새로운 정책이 해당 분야와 사회, 나아가 국가 전반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더구나 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고등교육에 관한 정책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법인화가 법제화된 서울대조차도 요식적이며 수박 겉핥기 식의 절차만을 밟아 다수 교수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국립대 법인화처럼 중차대한 정책과 관련해 정책이 가져올 파장을 가늠할 만한 국민들의 토론 자체가 없었다. 더구나 정부·여당은 지난해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서울대를 먼저 법인화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는 현 정권이 틈만 나면 강조하는 ‘국격’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었던가.
애초에 정부는 국립대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국립대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미명하에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서울대법인화법의 제정과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을 통해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국립대의 자율성 제고와는 거리가 먼 것임이 밝혀졌다. 이번에 서울대 교수들이 성명에서 적확하게 지적했듯이, 대학 경쟁력 향상이라는 관점에서도 법인화는 구체적인 실익이 없으며, 법인화 이후에도 여전히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부에 종속돼 자율적인 발전계획 수립과 실행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국립대 법인화는 등록금 인상을 초래하여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정부·여당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국립대 법인화를 시행한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국립대 법인화 시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력 강화라는 정책 목표와는 전혀 상반된 결과를 노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15일 발표된 일본 문부과학성 보고서 ‘국립대학 법인화 후의 현상과 과제에 대하여’에 따르면, 영국 <타임스>의 세계 대학순위가 법인화가 시작된 2004년에서 보고서가 발표된 2010년 사이에 도쿄대학은 12위에서 26위로, 교토대학은 29위에서 57위로, 오사카대학은 69위에서 130위로 크게 떨어졌다. 또 국립대학 전체의 학술논문 수도 2004년 5만9758편에서 2009년 5만6735편으로 오히려 상당히 감소하였다.
정치권은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서울대 법인화법을 폐기하는 법안을 즉각 처리해야 한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에 관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는가. 국립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려거든 법인화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의 자율성을 옥죄고 있는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교수·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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