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사월 초파일이면 서울 도심에 연등 행렬이 길게 이어지곤 한다. 연인원 10만여명이 참가하는 이 큰 행렬은 어둠이 깃들면서 시작하여 무채색의 콘크리트 일색인 도심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늦은 밤까지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어느 언론인의 표현대로 “등은 번뇌와 무지로 어두운 무명(無明) 세계를 부처의 지혜로 밝혀 달라고 바친다. 어둠을 살라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삼독(三毒)을 지워 주십사 공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등 행렬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연등 행렬이 과연 실정법상 적법한 것일까? 매우 불온하면서(?) 느닷없는 이 물음 앞에는 두 개의 답이 있을 뿐이다. 적법하거나, 또는 불법이거나! 그 중간은 없다. 일부 성급한 독자의 오독을 피하기 위해 먼저 밝혀 둘 것이 있다. 이 당돌한 되묻기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말하고자 함이지, 특정 종교행사를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하라는 취지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집시법 2조에 따르면, “시위”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법 10조에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연등 행렬이 “(10만여명에 이르는) 여러 사람이 (불가의 뜻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으므로, 집시법상 “시위”에 해당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연등 행렬은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도심을 행진하므로,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집시법 10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연등 행렬에 참가한 10만여명이 모두 다 집시법 위반사범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가? 경찰은 연등 행렬이 실정법상 위법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경찰청장의 ‘관용’에 의하여 그동안 허용해왔다고 하니, 이 나라 국민들은 법이 아닌, 공권력의 자비로운 관용에 의해서나 범법자의 신세를 면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인가? 성탄 전야에 기독교에서 행하는 이른바 ‘새벽송’은 또 어떤가. 이 역시 집시법상 예외 없이, 전면 금지된 야간시위에 해당되지 말란 법이 없는데, 이를 어쩐다! 기독교인들도 무심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외치며 새벽송 돌다간 필경 전과자 되기 십상인 것이다.
혹자는 이 법 15조의 “학문, 예술,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들어, 연등 행렬이나 새벽송이 종교행사이니만큼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이 법 조항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시라. 집시법 15조의 예외 허용은 ‘집회’에 한하여 그렇다는 것이지 ‘시위’에 관하여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안 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등 행렬이나 새벽송에 참여했다 해서 집시법상 야간시위 금지규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를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권력이 법을 내세워 공포를 조장하면, 오히려 그럴수록 공포의 대상은커녕 조롱거리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공권력 임의대로 법 집행이 좌우된다면 오죽하겠는가. 노파심에 한마디 더. 이 글을 ‘법 적용에 예외 없다’는 주문으로 이해해서 이천만 불자와 천이백만 기독교인을 모조리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일이야 설마하니 없겠지, 하면서도 내심 걱정된다. 그들의 행태가 너무나도 상식 밖 납득불가여서.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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