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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일본의 역사왜곡 세력에 대처하는 법 / 신주백

등록 2011-05-18 18:17수정 2011-05-24 17:14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지난 3월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당시 국내의 시선은 일본의 교과서에 독도가 어떻게 기술되어 있는지에 모아져 있었다. 분석해보니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중학교의 지리 교과서 4종, 공민 교과서 7종 모두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고, 7종의 역사 교과서 가운데 1종에도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있었다.

국내 여론은 당연히 들끓었다. 정부는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당하고만 있느냐, 독도에 관해 어떤 대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느냐는 비판과 함께 일본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강경론 일색이었다. 교과서의 서술 내용이 매우 의도적으로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주도해 왔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라는 우익단체가 발행한 공민 교과서의 경우 “일본 땅인 다케시마(독도)를 한국이 실력으로 점거했다”고 하여 불법점거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실효적 지배를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40여일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불채택 활동을 제외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분위기다. 우익 시민단체가 만든 지유사와 이쿠호사 교과서의 시판본이 4월28일부터 버젓이 판매되고 있음에도 이들의 행태를 비판한 국내 언론은 딱 한 곳이었다. 또다시 우리의 냄비 속성이 드러난 것이다.

3월30일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결국은 일본이 준 정보의 수준과 방향에 따라 국내 여론이 춤을 춘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대응해서는 일본의 역사왜곡 세력을 저지하고, 보통의 일본인과 함께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어가는 동반자로서의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우익 세력으로부터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워야 한다.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가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외교문제화했을 때다. 일본 정부는 ‘근린제국 조항’이라는 것을 교과서의 검정 기준에 포함시키겠다고 스스로 국제사회에 약속하였다.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사용된 일본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를 보면 상당히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왜곡 세력은 한국과 중국의 ‘압력’과 ‘내정간섭’으로 이 조항이 제정되었다며 줄기차게 삭제를 요구하였다. 문부과학성과 우익 정치인도 여기에 호응하였다. 그 결과 새역모의 역사 교과서를 비롯한 중학교 교과서의 2005년도 검정에서는 이 조항이 사실상 적용되지 않았다. 이후 근린제국 조항에 관한 법을 개정하지 않되 실제로는 적용하지 않는 선례를 누적함으로써 검정 기준을 사실상 수정해왔다. 이것이 일본 사회이다.

일본 역사왜곡 세력의 활동이 연례화함에 따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도 그때마다 반복적으로 경직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도 불행이다. 그래서 정부는 반관반민의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시민단체는 한·중·일이 함께하는 공동 역사교재를 만들고 청소년 캠프를 개최해왔다. 우리는 장기적이면서도 점진적이고 차분하면서도 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활동만이 정답은 아니다. 한·일 양국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국내정치를 고료하여 위원을 선정하고, '보험'처럼 취급하는 외교논리를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만, 정부와 민간 차원의 활동이 어느 한순간에 깔끔한 해답을 찾고자 시작한 움직임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와 그로 인해 형성된 무의식적인 편견까지 해소하는 데는 오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기본은 장기지속의 태도와 과거청산의 관점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을 허구화시키는 기본적인 방향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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