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의 관동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정부가 금리를 동결했다. 금리인상이 절실한 시기에 나온 또하나의 엇박자이다. 얼마 전 내놓은 ‘건설경기 연착륙 및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과 맥을 같이한다. 엄청난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 보따리를 풀어놓았는데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자, 또다시 금융정책까지 동원하여 경기부양을 위한 무지막지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동안 저금리·고환율로 만신창이가 된 서민경제 상황 속에서 단행된 이번 금리동결이 경기 활성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오히려 부실의 암덩이를 키워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근 몇년간 정부가 경기부양에만 매달린 결과, 중산층은 완전히 붕괴되고 있다. 금리 조정의 적절한 시기를 놓친 탓에, 저축보다 대출을 선호하게 된 가계와 부실업체는 저금리의 단맛을 끊지 못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체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을 볼모로 잡고 금융권 전체를 미궁으로 몰아가고 있다.
근래 잇따라 발표된 정부 대책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기름값 대책도 ‘100원짜리 인하’를 대표주자로 내세웠지만 흐지부지되었다. 지방 길들이기를 위해 미끼로 내세웠던 ‘4대 국책사업’과 ‘동남권 신공항’은 지역갈등과 여론분열만 조장한 셈이 되었다.
건설경기에만 집중한 ‘4대강 사업’ 때문에 더 중요한 문제인 서민과 경제 전반에 관한 고려는 건너뛰고 있지 않나 걱정이 크다. 경제는 전체를 바라보아야지 부분만 생각하면 낭패하기 쉽다. 주택경기도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보니 문제다. 사실 취득세보다는 양도세의 한시적 철폐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정책 아래서는 높은 양도세 탓에 매매가 되지 않으니 국가는 양도세 수입이 없고, 알량한 지방세마저 감세했으니 지자체도 수입이 줄어들고, 주택대출 완화로 서민 ‘가수요’를 부추기니 가계 역시 부채부담만 늘어난다. 결국 국가·지자체·가정을 멍들게 하는 ‘트리플 재정 악화’로 경제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정부는 집값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 급급한 나머지, 서민에게 대출을 조장하고 또다시 거품과 고성장 모드로 변환하는 데만 매진해왔다. 고용환경이 좋지 않고 노령사회로 급진전하면서, 물가인상과 가계소득의 감소는 저축률을 점점 떨어뜨리고, 결국 중산층의 붕괴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증가로 이어져 국가재정 위기만 키우는 구조다.
아마도 위기폭발의 도화선은 금융권과 금융감독원에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망해가는 은행의 혼돈 속에서도 여전히 시중은행은 특정 인맥 수장들로 흙탕물이, 금감원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 저축은행 영업정지의 최대 피해자는 비리공무원도 아니고 고액연봉의 은행 임직원도 아니고 바로 서민의 알량한 쌈지주머니였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은행을 부추기고 비호하여 피라미드 사기금융으로 만든 뒤 결국은 망하게 하여 힘없는 서민의 돈을 빼앗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농협 사태를 장기간 조사 끝에 북한 소행으로 마무리짓는 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진다. 특히 농협 예금주가 당한 상당한 부분의 피해는 예금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말로 해킹이 되었든 내부의 악의적 행위가 되었든 간에 예금 원장이나 대출 원장이 모두 날아가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눈앞이 캄캄하다. 도덕이 무너지는 나라에 산다는 게 무서울 뿐이다.
지금은 떠벌릴 때가 아니라 오므리고 겸손해야 할 때라고 본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왜 왔고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무엇 때문인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처절히 겪었던 구제금융 사태는 영원히 면역되는 백신이 아니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창의 관동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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