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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5·24에서 베를린까지/ 강태호

등록 2011-05-22 19:05수정 2013-05-16 16:41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른바 ‘5·24 조처’다. 담화는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제 한반도는 천안함 이전과 이후로 구분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9·11 이전과 이후 미국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 건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우리 군은 ‘천안함 침몰’을 9·11 테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5·24 조처는 9·11 이후 부시 대통령이 취한 위기대응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은 악의 축이자 폭정의 전초기지였다. 북핵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 정권이 문제라며 협상을 거부한 채 정권 교체를 추진하며 압박했다. 그러나 집권 후반 임기 2년을 남겨두고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자 핵폐기를 위한 협상으로 돌아섰다. 이 대통령은 1년 전 담화에서 전쟁기념관의 호국전시실을 배경으로 6·25 60주년을 상기시키며 “더 이상의 교류와 협력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이 천안함 공격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국제사회 어느 곳에도 설 곳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난 9일 베를린에서 이 대통령은 핵을 포기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내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고 말했다. 천안함은 사라졌다. 이미 예견된 것이지만 천안함과 6자회담의 분리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종전의 대결책을 슬그머니 접고 6자회담 테두리 안에서 북남대화에 나오기 위한 명분 세우기’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3일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자 이 대통령은 담화를 냈다. 이번엔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였다.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인데, 천안함·연평도를 묶어서 6자회담 재개와 연계시킨 것이다. 그러나 12월21일 정부가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를 강행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남과 북의 편에 서서 갈등해왔던 미국·중국은 올해 1월 워싱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동의 이익에 입각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5월12일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은 중국의 국익을 존중하고 봉쇄하지 않기로 했으며, 중국은 미국의 국익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미 동맹과 미·중의 전략적 협력이 충돌한다면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보여준 것이다. 일관되게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해온 중국은 ‘선 남북대화 후 북-미 접촉’을 타협안으로 내놨다. 북한은 이 흐름을 타고 ‘전면적인 대화공세’로 나섰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언제 어떤 주제든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며 정상회담까지 제안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의 흐름도 막을 수가 없게 됐다.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서울에 보내 대북 식량지원의 수순 밟기에 나섰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 제안’은 궁여지책의 출구 모색이다. 6자회담을 거부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지금 압박을 받고 있는 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17일 9·19 공동성명에 입각해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는 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은 남북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북-미 정상회담도 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5·24 조처는 북한의 사과 없이 어떤 대화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류와 지원을 끊고 경제·외교적으로 봉쇄하면서 압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를 내세운 압박과 봉쇄는 더이상 불가능하게 됐다. 이제 나홀로 제재만 남은 셈인데, 그렇다면 전환점을 맞은 건 한반도가 아니라 이 정부의 5·24 조처 아닌가.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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