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관객수를 기록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진정한 리더에 대한 갈망’이었다.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뜨거운 반응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는 4박5일 동안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했다. 2년이 흐른 지금도 ‘진정한 리더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지만, 리더십의 빈곤 현상은 사회 도처에 그늘져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정·재계 비리 소식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선거정국이나 인사청문회마다 드러나는 인물론 등은 우리 사회가 리더십의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비단 정치적 맥락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가까운 이들과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이야기 중 하나는 ‘관계의 갈등’ 특히 ‘상사와의 갈등’이다. 술집 안주로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상사에 대한 불만’이다. 어떤 상사는 마치 ‘나쁜 사람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 어떤 상사는 책임회피성 결정장애에 빠져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업무 지시를 하며, 목표 달성을 압박하며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시달리게 한다. 어떤 상사는 화를 내면서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반대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조직 내 성과 인정이나 승진 등에서 부하직원을 보호해주지 못해 문제되는 상사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리더상은 통제와 관리를 최대한 억제하며, 동시에 적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성과관리에 능수능란해야 한다. 나아가 열린 자세로 소통하며 구성원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지혜롭게 업무를 관리하며,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야말로 모든 상황과 경우에 딱 들어맞는 리더십을 구사하는 ‘슈퍼맨’에 가깝다.
크고 작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조직적 위기를 리더십의 위기로 규정하는 경향성은 이렇듯 새로운 리더십의 모색으로 이어진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리더 개인의 인물됨, 리더십으로 귀결되는 메커니즘이다. ‘카리스마·서번트·원칙중심·셀프·팔로어·변혁적 리더십’ 등 성공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할 태도와 기술이 넘쳐난다. 혼란의 틈새를 통해 경쟁적으로 분출된 리더십의 과잉이다.
고 신영복 교수는 개인의 변화는 개인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으며, 그 사람이 처한 관계의 질과 높이가 변화의 상한이라며, “모든 변화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그 사람 속에 담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병통치약으로서의 리더십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고, 사회적 관계의 다양한 역학을 변화시켜나가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안타깝게도 ‘리더’란 단어는 주로 지휘와 관련된 권한,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통념에 갇혀 있다. “리더가 앞장서야 변화가 일어난다” 같은 말은 변화를 일으킬 힘은 위계질서상으로 조직의 상위로 올라가야 가능하며,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어쩌면 자본주의 체제에 복속할 수밖에 없는 ‘조직’의 본래 구조가 조직 내 리더와 구성원의 사회적 관계들로 하여금 조직의 스트레스를 떠안게끔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지적하듯 “체제에 돌려야 할 분노를 인간에게 돌리고는 전전긍긍하는 개인, 그래서 한없이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무기력해지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gobogi@hani.co.kr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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