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공연에서 립싱크 혹은 핸드싱크를 하는 것에 벌금을 물리는 공연법 개정안, 이른바 ‘립싱크 금지법안’이 얼마 전 발의되었다. 최근 가요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가수밖에 볼 수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관중을 속이고 음악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립싱크 및 핸드싱크를 금하여 건전한 공연문화를 양성하고 공연자의 실연 능력 향상을 도모하자는 건데, 생각은 좋으나 방향은 영 글러먹었다. ‘가’만 있는 게 문제라면 ‘나’하고 ‘다’를 불러들여야지 ‘가’를 때려잡는다고 일이 될 리가 없다.
저런 농담 같은 발상에 비하면 문화방송의 <나는 가수다>는 의미심장하다. 잘 곰삭은 홍어 같은 임재범, 알싸한 레모네이드 같은 박정현, 목넘김이 깔끔한 맥주 같은 와이비(YB)…. 15살 이후로 발라드 음악이라고는 좋아해본 일이 없는 나도 3대째 내려온 평양냉면 같은 담백함을 가진 김연우의 노래를 통해 발라드의 맛에 반해 버렸다. 사람들의 입맛이 특정한 음식, 예컨대 패스트푸드에 치우쳐 있는 상황이라면 이처럼 다양한 메뉴를 가진 훌륭한 만찬을 맛보여주는 게 답에 가까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 역시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아이돌 편중의 현실을 극복하고 ‘진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기획 의도는 또다른 편협함의 가능성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프로그램은 가수의 ‘노래’를 음악의 중심에 세운다. 윤도현이 자신과 연주자를 대등한 비중으로 생각해서 ‘와이비’란 이름으로 자신의 밴드를 강조한다고 해도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수’ 윤도현 개인이다. 요컨대 <나는 가수다>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노래가 중심에 놓여 있는 일부의 음악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탈락을 면하기 위해 대중으로부터 점수를 따야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은 그마저 자극적인 가창력의 음악으로 한정시킨다. 담백하던 김연우는 살아남기 위해 목에 핏줄을 세우며 노래해야 했고 이건 기껏 잘 만든 물냉면에 쓸데없이 다대기 얹는 바람에 맛을 망쳐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결국 <나는 가수다>가 껴안을 수 있는 음악은 제한적인 음악일 뿐이다.
아이돌 음악이 ‘가’라면 <나는 가수다>의 음악 역시 그저 ‘나’, 그렇다면 내가 몸담고 있는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을 포함한 인디음악은 ‘다’라 할 수 있겠다. 만약 <나는 가수다>를 기준으로 하면 상습적인 음 이탈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다’는 가짜 음악이 될 것이다. 물론 누군가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을 엉성하다고 싫어하는 것은 내가 임재범 노래의 과잉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만큼이나 그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어느 게 가짜고 어느 게 진짜라고 하는 순간, 상황은 편협해진다. 질 좋은 퍼포먼스를 보고 싶은 취향이 있는 상황에서 립싱크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걸 가짜라고 얘기하며 그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한다는 건 과잉이다.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인디음악 역시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공연문화 발전을 저해한다며 음량이 크면 벌금 매기는 규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식객>의 유명한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은 이 세상 모든 청취자의 수와 동일하다. 가, 나, 다뿐만 아니라 라, 마, 바… 무수히 많은 음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중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은 있을 수 있어도 가짜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짜가 있다면, 진짜 음악이 있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므로 누가 가짜니 진짜니 판가름짓고 따돌릴 생각 하지 말고 이 모든 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차라리 공영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에 장르 할당제를 실시하든지, 좀더 근본적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을 짓든지. 아이돌 때려잡을 생각 하지 말고 다양한 음악이 숨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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