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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내수 경기를 살리려면 / 홍대선

등록 2011-05-29 21:39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경제부처 장관들도 답답했던가 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경기는 회복되고 수출 경기는 좋은데, 국민의 삶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중성이 있다.” 바통을 이어받을 박재완 장관 후보자도 “수출은 호조세인 반면, 내수 침체는 문제”라고 했다.

우리 경제는 빛과 그늘의 연속이다. 지난달 수출은 491억달러로 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14개월째 흑자 기조다. 그럼에도 서민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이자부담은 늘고 물가수준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고물가를 부추겼고, 실질임금의 하락은 구매력을 떨어뜨렸으니, 엠비노믹스 전파에 앞장선 두 사람은 내수 부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괜히 딴죽을 거는 게 아니다. 수출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데 반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마는, 체감 경기는 왜 이 모양인가 식으로 정책당국자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라도 근본 원인을 살펴 처방만은 제대로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간단히 살펴보자. 경제학 교과서에 평균 소비성향이란 게 있다. 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 소비지출을 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소득 최상위층인 5분위의 처분가능소득은 최하위층인 1분위보다 7배 이상 많지만, 소비성향은 최하위층이 2.4배나 많다.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를 위한 지출을 훨씬 많이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내수를 진작시키려면 저소득층의 소비지출을 늘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올해 1분기 고소득층의 소비성향은 61.0%로, 전년 동기보다 0.6%포인트 떨어졌다.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 효과가 별로 없다는 방증이다.

올해 들어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국내총소득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니 내수가 살아날 리 없다. 수요 부족으로 수익 전망이 좋지 않은데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기업이 있을까. 대기업들이 장사로 번 돈을 내부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는 것은 세금 감면을 못 받아서가 아니다.

원인을 모르면 처방을 정확히 할 수 없다. 법인세를 깎아준 대가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소득세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부자가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는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다. 내수를 진작하려면 오히려 부자들한테서 세금을 더 거둬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게 전체 경제를 살리는 길인데도 말이다.

부자감세의 기대했던 효과는 없고 민심은 요동치니, 친기업을 외치고 세금을 깎아준 정부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여당이 들썩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걱정되는 건 안이한 현실인식이다. 박재완 후보자는 감세정책을 고수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내년에 법인세를 추가 감면하면 상위 0.1%의 기업이 감세액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다. 정부·여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감세의 최대 수혜자는 소수 대기업이다. 엠비노믹스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한 손에 부자감세 카드를 쥐고 건전 재정과 서민을 걱정하는 이중적 태도는 보기에 민망하다. 잘못된 처방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


오늘 한나라당이 ‘감세철회 의원총회’를 연다. 부자감세 신봉자들은 감세가 소비 진작과 투자 확대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경기를 선순환시키려는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기대와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면 접는 게 옳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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