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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정연주와 김경욱 / 김규항

등록 2011-05-30 22:48수정 2011-05-31 10:57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유유상종이랄까,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한다. 그들에게 이명박은 나쁜 대통령의 표상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명박이 국민을 고통스럽게 한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사실은 아니다. 이명박은 ‘모든 국민’에게 나쁜 대통령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수구세력에게 이명박은 전임자들에 비해 꽤나 좋은 대통령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며 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국민에게 다 좋은 대통령도, 모든 국민에게 다 나쁜 대통령도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어떤 사람들에겐 좋은 대통령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나쁜 대통령이었다. 이명박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를 다 좋은 대통령이라 기억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한겨레> 논설위원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에서 <한국방송> 사장을 지낸 정연주씨에게 노무현은 좋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노무현 정권에서 탄압받고 구속된 전 이랜드노조 위원장 김경욱씨에게 노무현은 나쁜 대통령이다. 정연주씨는 노무현 추모집회에서 노란 티셔츠를 입고 노래할 만큼 노무현을 기리지만, 김경욱씨는 노사모 출신임에도 ‘노동자들에게 노무현과 이명박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고 말한다. 정연주가 진실일까, 김경욱이 진실일까?

둘 다 진실이다. 정연주 같은 사람들에게, 개혁적인 중산층 인텔리들에게 노무현은 이명박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그 시절에 정치는 물론 학술, 문화예술, 미디어, 사회운동 전반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정부와 대기업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는 박원순씨의 토로는 그걸 드러내는 한 사례다. 그러나 김경욱 같은 사람들에게, 노동자 인민의 현실에 집중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이명박과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은 일관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삼성왕국을 만들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운 대통령이었다.

정연주씨나 김경욱씨나 이명박 정권이 교체되길 원한다. 정연주씨는 개혁세력은 물론 진보세력까지 똘똘 뭉쳐 노무현 정권 수준으로라도 돌아가는 정권교체를 바란다. 그러나 김경욱씨로선 대다수 노동자 인민의 현실을 배제하고 가는 정권교체를 찬성할 도리가 없다. 진실은 둘이며 두 진실은 병립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될까? 그 최소한은 서로의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연주씨는 ‘나에게 노무현은 좋은 대통령이었지만 김경욱에겐 나쁜 대통령이었다’고 인정하고, 김경욱씨는 ‘나에게 노무현은 나쁜 대통령이었지만 정연주에겐 좋은 대통령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연대고 연합이고 모색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김경욱의 진실에 동의하는 사람들보다 정연주의 진실에 동의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를 ‘진보’라 주장한다. 김경욱의 진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노동자 구속자 수가 이명박 때보다 많았던 정권으로 돌아가는 게 진보냐’ 물으면 그들은 도리어 ‘진보 딱지 붙이기다! 진보에 면허라도 있는가!’ 반발한다. ‘당신들에게 노무현과 이명박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대다수 노동자 인민들에겐 다를 게 없지 않았나’ 되물으면 그들은 ‘노무현과 이명박이 같다니! 교조주의자들, 순혈주의자들!’이라 비난한다.

이치도 염치도 벗어난 풍경이지만 ‘어떻게든 이명박 정권을 벗어나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등에 업은 그들은 기세등등하기만 하다. 세상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바로 세워지는 법이거늘,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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