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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사실’ 만들기

등록 2011-06-05 18:48수정 2011-06-06 20:12

오철우 기자
오철우 기자
천안함 조사의 의심 면역력이 든든하지 않다
정치적 사실(?) 아닌 과학적 사실 되려 했다면…
여러 분야를 다루는 종합과학저널로서 <네이처>와 더불어 높은 명성을 누리는 <사이언스>에 최근 2주 동안 이 저널의 체면을 구길 만한 과학 논란이 벌어졌다. 세계 언론이 큰 뉴스로 다루며 주목했던 연구논문에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는 전문가 견해와 논문이 실렸기 때문이다. 문제의 논문을 처음 실은 것도 사이언스요, 반론을 적극 실은 것도 사이언스이니 더욱 눈길을 끌 만했다.

논란 대상이 된 논문은 지난해 12월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연구팀의 연구물이었다. 발표 며칠 전부터 나사가 ‘우주생물학적 발견’이 곧 공개될 것이라고 예고해, 외계 생명체의 단서나 증거 아니냐는 호기심으로 지구촌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며칠간 뜨겁게 했던 그 논문이다. 정작 그 발견이라는 게 희귀한 박테리아였음이 발표된 뒤 나사는 과학기관이 과학을 과장홍보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논문만으로도 큰 화제였다. 지구 생물체를 구성하는 6대 원소 중 하나인 인(P) 대신에 독성물질 비소(As)를 써서 디엔에이를 구성하는 예외적인 박테리아가 발견됐다니 말이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지금, 그 발견이 ‘사실’인지 아닌지 불투명해졌다.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실린 반박 글 8편은 이른바 ‘비소 박테리아’를 찾아낸 실험 방법과 해석이 적절했는지 의문을 본격 제기했다.

며칠 뒤엔 2009년 이 저널 온라인판에 실린 논문을 반박하는 다른 논문 2편이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역시 국내에도 꽤 보도된 연구물이 문제가 됐다. ‘만성피로 증후군이 특정 바이러스(XMRV)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물은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후속 연구들에선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고 실험과정에 오염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사이언스 쪽은 애초 논문의 저자들에게 논문 철회를 권고했다.

분명 저널의 명성을 흔들 만한 일이다. 과학저널은 어떤 논문을 실을지 말지 결정할 때에 다른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치는 동료심사제도를 운영한다. 권위 있는 저널일수록 그 문턱이 높고, 덕분에 다시 권위를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엄정 심사를 거쳐 실은 화제의 논문들이 반박에 직면했으니, 언론매체가 특종 보도 뒤 이를 뒤집는 기사를 내는 꼴과 비슷해 매우 불편한 일이다.

사이언스의 신뢰는 이제 곤두박질칠까? 트위터에서 만난 과학자 친구들은 “(반박 논문을 싣는 일은) 제대로 된 저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과정”이라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저널도 비교적 담담하다. 오히려 이처럼 논문 발표 이후에 이어지는 검증, 재현, 반박의 과정이야말로 실험실에서 갓 나온 연구물을 믿음직한 사실로 만드는, 즉 ‘의심을 견디는 면역력’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의심은 과학의 출발점”이라는 흔한 말이 있다. 갖은 의심을 견딘 연구물만이 점점 단단한 사실에 다가서고, 연약한 가설은 견고한 이론이 되고, 결국 널리 인용되는 ‘교과서의 사실’에 이른다. 사실에도 등급이 있다. 그러니 많은 경우에 새로운 발견을 발표한다는 것은 곧 사실임을 공표하는 게 아니라 이제 ‘사실 검증의 광장’에 나섰음을 널리 알리는 과정이다.

과학적 사실임을 앞세운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결과는 어떨까? 과학 활동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때, 그것은 ‘어느 쪽에서 보면 사실이지만 어느 쪽에서 보면 사실이 아닌’ 그런 등급에 있다. 의심에 대한 면역력은 든든하지 않다. 정치적 사실(?)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 되고자 했다면, 실제 과학자들이 일상으로 행하는 의심과 검증의 절차를 회피하지 않고 견뎌내야 했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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