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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을미사변의 진짜 이유 / 임종업

등록 2011-06-05 21:25수정 2011-06-05 21:28

을미사변은 1895년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낭인들이 건청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사건이 새벽 6시에 감행돼 목격자가 많은 탓에 사건 전모는 알려졌지만 그 배후와 목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 출간을 앞둔 재일 사학자 김문자씨의 저서 <명성황후 시해와 일본인>을 보면 을미사변의 속내가 손에 잡힌다. 진짜 주범은 대본영의 수뇌부, 즉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와 육군대신을 겸하던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며, 진짜 목적은 광화문 앞에 있던 조선전보총국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광화문 육조거리에 있던 조선전보총국은 한반도 유선통신의 중심으로 서로전신(의주~서울), 남로전신(서울~부산), 북로전신(서울~원산)을 관할하고 있었다.

실마리는 을미사변 전해인 1894년 7월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일전쟁 이틀 전인 이날 일본군은 경복궁을 침입해 고종을 압박하는데 이날 조선전보총국을 함께 장악한다. 일본군은 통신시설을 장악함으로써 개전 7개월 만에 청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거액의 배상금과 랴오둥반도, 대만 등을 차지하지만 삼국간섭으로 다 토해놓게 됐다.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기득권은 내놓을 수 없다고 버텼다. 최소 1개 대대 병력을 주둔시켜 한반도의 전신선을 계속 관장하려 했던 것이다. 통신의 관할이 한반도 지배의 핵심이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정부가 이를 반대했고 그 배후가 명성황후였다.

사용자 위치추적 장치를 내장해 말썽을 빚은 아이폰이 지난 1월로 국내에서 200만대 넘게 팔렸다. 외국 통신회사가 한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게 된 상황에서 을미사변의 악몽이 떠오른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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